꽃바구니 대신 작은 나무 한 그루
행정포털 게시판에 승진자 명단이 뜨고 그곳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여기저기서 걸려 오는 축하 전화를 받고, 내부 메신저에 쌓이는 문자를 확인하느라 바빠진다. 명단에서 자기 이름을 찾지 못한 사람도 애써 표정을 가다듬고 승진자를 찾아간다. “축하드립니다.”라는 말을 건넨 뒤 자리로 돌아가는 뒷모습에는 쉽게 꺼내지 못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
공직슬롯는 해마다 두 차례 이런 시간을 겪는다. 자리는 한정되어 있지만 이제는 자신이 올라갈 차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늘 여러 명이다. 심사 일정이 알려진 날부터 발표일까지 당사자들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업무를 이어 간다. “되면 좋고, 아니면 어쩔 수 없지요.”라고 말하지만, 그 말처럼 마음까지 담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승진은 긴 공직생활에서도 몇 번 만나기 힘든 일이다. 삼십 년 넘게 근무해도 직급이 바뀌는 횟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그래서 승진을 앞둔 사람은 눈에 띄는 성과를 내려고 하고, 다른 사람이 꺼리는 일도 선뜻 맡는다. 일이 많기로 소문난 팀을 맡더라도 싫은 기색을 드러내기 어렵고, 자신이 얼마나 어려운 일을 감당하고 있는지도 상급자가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열심히 일하는 것만큼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일도 중요해지는 시기다.
긴 기다림 끝에 명단이 발표되면 다음 날부터 승진자가 있는 사무실로 꽃다발과 화분이 들어온다. 여러 개의 꽃대에 크고 화려한 꽃을 매단 서양란은 축하 화분의 단골이다. 윤기가 흐르는 잎과 고풍스러운 도자기 화분은 멀리서도 눈에 띈다. 꽃바구니에서는 장미와 백합의 짙은 향기가 퍼지고, 막 배달된 꽃잎에는 작은 물방울이 맺혀 있다. 회의실 탁자 한가운데 놓인 꽃들은 승진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를 대신 말해 주는 듯하다.
그러나 꽃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며칠이 지나면 꽃바구니의 꽃잎 가장자리가 마르고, 물에 잠긴 줄기에서는 풋내와 함께 비릿한 냄새가 올라온다. 서양란도 꽃이 떨어지고 꽃대가 누렇게 마르면 처음의 화려함을 잃는다. 여름철 에어컨 바람을 오래 맞거나 물을 조금만 잘못 주어도 잎 끝이 갈색으로 변한다. 한동안 사무실을 환하게 밝혔던 화분은 구석으로 밀려나고, 마침내 크고 무거운 도자기 화분만 남는다.
승진과 인사이동 철은 시청 주변 화원들의 대목이다. 승진자뿐 아니라 자리를 옮기는 사람에게도 ‘영전’이라는 이름으로 꽃바구니와 난초 화분을 보낸다. 청사 매점 한쪽에 자리 잡은 화원 앞에도 주문을 기다리는 화분들이 줄지어 놓인다. 축하할 사람은 많고, 무엇을 보내야 할지 고민할 시간은 부족하니 눈에 잘 띄는 꽃을 고르는 일이 가장 손쉬운 선택일 것이다.
이번에 나는 승진한 후배들에게 난초 대신 작은 나무를 선물했다. 자주 가는 화원에서 실내에서도 비교적 잘 자라고, 잎이 오래 푸른 나무를 몇 그루 골랐다. 옮겨 심고 값을 계산해 보니 난초 화분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그러나 가격보다 더 마음에 든 것은 꽃이 진 뒤에도 버려지지 않고 주인의 곁에 남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화분을 받은 사람이 꽃 한 송이 없는 나무를 보고 섭섭해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나는 그 나무를 고른 일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물을 주고 창가로 옮겨 햇빛을 보여 주는 수고가 필요하겠지만, 그 수고만큼 함께하는 시간도 길어질 것이다. 잎에 먼지가 쌓이면 닦아 주고, 가지가 자라면 더 큰 화분으로 옮겨 심을 수도 있다. 처음에는 바카라상 한쪽에 겨우 놓였던 나무가 몇 해 뒤에는 제법 넉넉한 그늘을 만들지도 모른다.
승진의 기쁨도 처음 며칠이 지나면 일상 속으로 스며든다. 축하 전화는 잦아들고 꽃은 시들지만, 새 직급에 따르는 바카라임과 일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축하도 한순간 크게 피었다가 사라지는 것보다, 축하가 끝난 뒤의 평범한 날들에 함께할 수 있는 것이면 좋겠다. 앞으로 누군가에게 축하를 건넬 일이 생기면 나는 다시 작은 나무를 고를 것이다. 그 나무가 어느 날 연둣빛 새잎 하나를 밀어 올릴 때, 오래전 받았던 축하도 그 사람의 바카라상 위에서 다시 한번 살아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