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祈禱)

믿음이 없어도 기도하게 되는 밤이 있다.

by박계장

내 또래의 머리가 희끗한 의사는 대수롭지 않은 어조로 수술을 말했다. 예사로운 감기약을 처방하듯 덤덤한 태도였다. 그 태도가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다.


수술대 위에서 나는 등을 둥글게 말고 무릎을 가슴 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척추 사이로 바늘이 들어오자 허리 깊은 곳에서 차가운 기운이 퍼졌다. 의식은 또렷했지만 허리 아래는 서서히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멀어졌다. 통증도 없었고 내 다리도 내 것이 아닌 느낌이었다. 수술 중에 의사와 간호사의 낮은 말소리가 오갔다. 정확한 말은 들리지 않았다.


수술이 끝나고 병실로 돌아온 뒤에도 하반신은 남의 살 같았다. 발가락 끝에 힘을 주어도 침대 시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간호사는 마취가 풀릴 때까지 베개도 베지 말고 바르게 누워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당황스러움이 밀려왔다. 이 감각이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떨까. 누군가의 손을 빌리지 않고는 돌아눕지도 못하는 삶이라면 나는 어떻게 버텨야 하나. 몇 달을 요양병원 침대에서 보내신 외할머니와, 간병인의 손에 기대 사셨던 이모부의 마른 얼굴이 하얀 천장 위로 겹쳐졌다. 웅성거리는 병실의 소음 속에서 간간이 잠이 들었다가 깨기를 반복했다.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알지 못했다.


마취가 풀리자 통증이 밀려왔다. 링거 줄을 타고 무통 주사액이 들어가고 있었지만, 욱신거리는 통증은 가만히 누워 있는 것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침대 난간을 쥔 손에 땀이 고였다. 그 순간, 오래전 묻어두었던 이름이 불쑥 입안에 맴돌았다. 이 고통만 잠시 지나가게 해 달라고 매달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스무 살 무렵의 대저동이 생각났다. 당시 우리 집은 동네 입구에서 작은 슈퍼마켓을 했다. 부지런히만 하면 먹고살 만한 가게였다. 문제는 아버지의 술이었다. 아버지는 성실하지 못했고 가장으로서의 바카라임감도 없었다. 술을 마신 날이면 가게는 엉망이 되었고, 다음 날 아침 아버지는 메케한 술 냄새를 풍기며 하루 종일 방에 누워 일어날 줄 몰랐다. 주력 판매 물품인 부식과 채소를 새벽시장에서 떼어오지 못하니 손님들도 발길을 돌렸다. 방구석에 누워 있는 아버지의 등을 보며 불만이 쌓였다. 그의 행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채워지지 않는 매대처럼 빚이 늘어갔다는 사실은 그로부터 몇 년 후 IMF를 맞아 슈퍼를 접게 되었을 때 알게 되었다.


그 눅눅한 절망을 피해 도망친 곳이 교회였다. 군대 선임의 권유로 서대신동에 있는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하는 거리였지만 매주 나흘을 그곳에서 보냈다. 청년들의 환대와 밝은 불빛 속에서 나는 비로소 숨을 쉬었다. 신을 향한 깊은 믿음이 생겼다기보다는,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아버지와 막막한 형편으로부터 잠시 숨을 수 있는 방공호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 생활도 오래가지 못했다. 세상은 교회 안의 가르침과 다르게 굴러갔다. 신앙을 말하던 이들이 거짓을 말하고 법정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았고, 같은 신을 믿는다는 나라들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었던 숱한 역사 앞에서 믿음이라는 말은 내 안에서 조금씩 힘을 잃었다. 무조건 믿으라는 말도 납득되지 않았다. 공직 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을 하면서 그곳의 사람들과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몇 년 전 우연히 텔레비전 화면에서 김해 무척산 꼭대기에서 당나귀를 키우며 기도원을 지키는 선임을 보았다. 그는 당나귀에게 먹이를 주며 웃고 있었다. 신앙 이야기를 다시 나누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람의 얼굴은 반가웠다.


병실의 조명이 푸르스름하게 가라앉은 밤, 스무 살의 대저동과 지금의 병상을 나란히 놓아 보았다. 스무 살의 나는 무력한 현실을 이기지 못해 교회로 갔고, 지금의 나는 육체의 통증을 견디지 못해 신의 이름을 떠올렸다. 두 마음의 모양은 다르지 않았다. 사람은 제 발로 걷고 제 손으로 밥을 먹을 수 있을 때만 오만하게 독립적이다. 내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일 앞에서 인간은 비로소 제 힘으로 되는 일이 많지 않음을 알게 된다.


퇴원 수속을 밟았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현관문을 열었을 때, 병실의 소독약 냄새 대신 익숙한 집안의 공기가 확 밀려왔다. 베란다에 나란히 놓인 초록 식물들과 거실의 정적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비로소 안도감이 번졌다.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휴대전화 화면을 위아래로 쓸어 올리는 일상이 시작되자 병실의 밤은 빠르게 휘발되었다. 신에게 매달리고 싶던 마음도 며칠 만에 자취를 감췄다. 고통이 사라지자 아팠을 때의 마음을 너무 쉽게 잊었다.


나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세계나 신을 믿지 않는다. 신은 인간이 자신의 나약함을 버티기 위해 만들어 낸 이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허리 아래의 감각을 잃고 누웠던 그 밤 이후로, 나는 기도하는 이들을 함부로 냉소하지 않기로 했다. 사람은 믿음이 깊어서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 순간을 홀로 견뎌낼 재간이 없어서, 어디든 손을 내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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