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 가서 예쁘다.

아직도 칭찬해 주면 힘이 난다.

by박계장

메일을 보낸 뒤, 나는 알림창이 뜨기를 기다렸다.


국장의 대학원 특강을 위해 만든 발표자료였다. 흔히 보던 공공기관 슬라이드와는 조금 다르게 꾸몄다.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부산시 고유의 디자인 규칙을 반영했고, 부산시 소통 캐릭터인 부기가 슬라이드마다 내용에 맞는 표정과 몸짓으로 등장하도록 구성했다. 화면을 넘길 때마다 색과 여백이 제자리를 잡았고, 딱딱한 정바카라 문장 옆에서 부기의 얼굴이 말의 숨통을 틔워 주었다. 며칠을 들여 다듬은 자료였다. 혼자 보아도 제법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자료 전체를 직원들과 공유했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도록 프롬프트까지 함께 넣었다. 메일 끝에는 한 줄을 덧붙였다. 이런 방식의 발표자료를 만들 일이 생기면 도와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그 말 뒤에는 순수한 도움의 마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누군가 “팀장님, 이거 어떻게 만드셨어요?” 하고 물어봐 주기를 바랐다. 요즘 기술이 이렇게까지 됐느냐며 놀라는 반응도 조금 기대했다.

메일이 오면 컴퓨터 오른쪽 아래에 알림창이 뜬다. 서넛이 자료를 공유해 주어 고맙다는 의례적인 답장을 보내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나는 모니터를 보다가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알림창 쪽으로 눈길을 주었다. 화면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대로였다. 기대한 사람은 나였고, 민망해진 사람도 나였다.


그 기다림이 민망했다. 공직 슬롯는 다른 조직보다 조금 더 보수적인 곳이다.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미숙함의 증거처럼 여겨지던 분위기가 분명히 있었다. 나도 그 안에서 오래 지냈다. 기대하는 법도, 실망하는 법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쪽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그 어느 서랍 속에도 넣어 두지 못한 채, 나이 든 몸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무렵 방송 날짜를 꼽아 가며 기다리는 드라마가 있었다. 주말 밤에 소파에 몸을 묻고 화면을 켜는 시간이 한 주 동안의 수고에 대한 작은 보상 같았다. 드라마 속에는 찌질한 감독이 나온다. 그는 실패한 사람은 아니다. 영화를 다섯 편이나 찍은 감독이다. 그런데도 아직 데뷔하지 못한 오랜 후배 앞에서 더 쉽게 흔들린다. 말은 거칠고 표정은 날카롭다. 자존심을 지키려는 몸짓은 때로 유치할 만큼 과장된다.


OTT 제작사의 투자를 받게 된 그 감독은 조건 하나를 받아들여야 했다. 시리즈물 집필 경험이 없으니 경험 있는 작가와 공동 집필을 하라는 것이었다. 겉으로는 합리적인 제안이었다. 그러나 그의 귀에는 달리 들렸을 것이다. 당신 혼자는 못 믿겠다는 말. 당신의 능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 아내가 등을 떠밀어 작가를 만나러 나가면서도, 그는 속으로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 거절할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나온 작가는 예상과 달랐다. 작가는 자기 실력을 앞세우지도 않았고, 기싸움을 걸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만난 감독들 가운데 최고라며 그를 추켜세웠다. 감독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손뼉을 치며 웃었다. 처음에는 날을 세우던 감독의 얼굴이 조금씩 풀렸다. 굳어 있던 어깨도 내려앉았다. 자신을 알아봐 주는 사람 앞에서 그는 금세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런 사람에게는 정이 간다. 남의 마음을 억지로 열려고 하지 않고, 먼저 그 사람이 지키고 싶어 하는 자리를 알아봐 주는 사람에게는 마음이 조금씩 기운다. 나는 그 장면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사람은 참 이상하다. 거친 말에는 굳게 닫혀도, 자신을 알아봐 주는 말 한마디에는 맥없이 열린다. 공격받을까 봐 미리 성을 쌓아 두었던 사람도, 누군가 자신을 제대로 봐 주면 먼저 어깨의 힘을 뺀다.


칭찬 한마디가 힘을 갖는 것은 능력을 높여 주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말 속에는 “당신은 여기 있어도 되는 사람입니다”라는 허락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기 자리를 의심하는 순간이 있다.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이 실력인지, 운인지, 오래 버틴 대가인지 알 수 없어 마음이 흔들리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에 누군가 건네는 인정의 말은 과장된 칭찬이 아니라 작은 의자 하나처럼 느껴진다. 잠시라도 그 위에 앉아 숨을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게임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말보다 표정을 먼저 보게 된다. 회의실에 들어서는 사람의 어깨, 보고서를 내밀 때 손끝에 들어간 힘, 반론 한마디에 먼저 굳어지는 얼굴을 본다. 언젠가 회의 자리에서 한 간부가 조심스럽게 반론을 제기한 부하 직원을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쳐다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회의가 끝난 뒤 복도에서 마주쳐 인사를 해도 쳐다보지 않았다고 했다. 체면이 상한 것인지, 아니면 그보다 깊은 무엇이 건드려진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직바카라이 흔들리면 자기 말의 무게까지 함께 사라질까 봐 두려운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어른이 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어른들은 그 마음을 품위나 직바카라이나 논리 뒤에 숨기는 법을 조금 더 잘 배울 뿐이다. 직위가 높아질수록 그 마음은 더 세련된 옷을 입는다. 때로는 권위라는 이름을 달고, 때로는 원칙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타난다. 그러나 그 안을 조금 들여다보면 “나를 함부로 보지 말라”는 불안이 웅크리고 있을 때가 있다.


드라마를 보다가 나는 피식했다. 칭찬 한마디에 금세 풀어지는 그 감독을 보며 처음에는 남의 약점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곧 알림창을 기다리던 내 얼굴이 그 장면 위로 겹쳐졌다. 퇴직을 몇 년밖에 남겨 두지 않은 나이 든 공무원이나 드라마 속 감독이나, 결국 원하는 것은 비슷했다. 누군가 내 수고를 알아봐 주는 것. 내가 아직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 주는 것. 그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누군가에게 정이 가는 사람인가. 생각해 보면 자신이 없다. 나는 표정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웃는 얼굴이 아니어서 선뜻 다가가기 어렵다는 말도 들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보다 크면서, 정작 나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한마디를 건네는 일에는 얼마나 인색했던가. 알림창을 기다리면서도, 내 쪽에서 먼저 누군가의 화면에 알림 하나를 띄워 준 적은 얼마나 있었던가.


정이 가는 사람은 예쁘다. 얼굴의 윤곽이나 눈매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상대의 말을 허투루 흘려듣지 않고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여 듣는 사람이 예쁘다. 말끝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고, 좋은 것은 좋다고 말해 주는 사람이 예쁘다. 그런 사람 앞에서는 누구나 조금 덜 방어적이 된다. 목소리는 낮아지고, 말끝은 부드러워지고, 마음속에 세워 두었던 담도 조금 낮아진다.

아름다움은 때로 얼굴에 머물지만, 예쁨은 태도에 남는다. 누군가를 알아봐 주는 일은 생각보다 큰일이다. 그 일은 한 사람에게 잠시나마 자기 자신을 미워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건네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그런 말을 넉넉히 건네는 사람은 못 된다. 그래도 이제는 알림창을 기다리기만 하는 사람으로 늙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 애써 만든 하루 앞에서, 짧더라도 먼저 불을 켜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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