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보다 만족을 우선하기로 했다.
거실 텔레비전 화면은 그날도 까맣게 멈춰 있었다. 전원 표시등은 분명히 켜져 있었지만, 화면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리모컨 버튼을 몇 번 더 눌렀다. 전원 버튼을 길게 눌러도 보고, 입력 버튼도 눌러 보고, 괜히 리모컨 뒷면을 열어 건전지를 굴려 보기도 했다. 잠시 뒤 화면 한쪽에 엑스표가 쳐진 작은 아이콘이 떠올랐고, 그 밑에 ‘명령어 없음’이라는 말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텔레비전이 아주 죽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삼일에 한 번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화면이 켜졌고, 그런 날에는 영화도 나오고 유튜브도 나왔다. 화면이 들어오는 날의 화질은 여전히 깨끗했다. 고장이라고 단정하기에도 애매했고, 멀쩡하다고 믿기에도 찜찜했다.
그 텔레비전은 6년 전 코스트코에서 산 중국산 제품이었다. 그때 나는 매장 한쪽에 놓인 여러 대의 텔레비전 앞을 몇 번이나 오갔다. 같은 크기의 국내 브랜드 제품보다 가격이 훨씬 낮았고, 화면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당시로서는 스마트 기능도 제법 그럴듯했다. 인터넷에 연결하면 영화도 보고 드라마도 볼 수 있다니, 굳이 더 비싼 제품을 살 이유가 없어 보였다. 나는 그 물건을 집으로 가져와 직접 설치했고, 화면이 처음 켜지던 순간에는 꽤 알뜰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 집 텔레비전은 예전처럼 집안의 중심은 아니었다. 인터넷을 설치할 때 케이블 방송은 신청하지 않았으니 공중파 방송도 나오지 않았다. 주로 OTT 플랫폼에서 마음에 드는 영화나 신작 드라마를 골라 보았고, 요즘에는 그보다 유튜브를 더 자주 틀었다. AI 활용법을 설명하는 영상, 여행 유튜버가 낯선 도시의 골목을 걷는 영상, 누군가가 공항 라운지에서 컵라면을 먹는 영상 같은 것들이 저녁 밥상 곁을 지나갔다. 특별히 대단한 것을 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저녁을 먹으며 틀어 두던 화면이 사라지고 나니 밥상 앞의 시간이 조금 길어졌다. 젓가락을 내려놓는 소리와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 괜히 크게 들렸다.
고장의 원인은 대충 짐작이 갔다. 전원은 들어오는데 화면이 먹통이니 액정 자체보다는 메인보드 쪽 이상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 요즘 텔레비전은 예전의 텔레비전이 아니다. 거의 컴퓨터에 가깝다. 액정이 멀쩡해도 머리에 해당하는 회로가 말을 듣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는 검은 화면 앞에서 전원선을 뽑았다가 다시 꽂고, 잠시 기다렸다가 또 리모컨을 눌렀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 보면 내가 텔레비전을 고치는 것인지, 내 성질을 시험하는 것인지 헷갈렸다.
며칠 만에 화면이 돌아온 날에는 설정 초기화까지 해 보았다. 엉켜 버린 텔레비전의 머릿속을 한 번 비우고 나면 예전처럼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뉴를 찾아 들어가 초기화 버튼을 눌렀고, 화면이 꺼졌다가 다시 켜지는 동안 나는 괜히 숨을 죽였다. 그 뒤로 이틀 정도는 화면이 멀쩡하게 켜졌다. 이제 됐나 싶어 저녁을 먹으며 영상을 틀어 두었는데, 갑자기 화면이 꺼졌다가 다시 그 문장이 화면 한복판에 떠올랐다. ‘명령어 없음.’
한동안은 고장 난 텔레비전 옆에 일체형 컴퓨터를 놓아 두었다. 무선 마우스와 무선 키보드를 소파 옆에 두니 그럭저럭 조작은 가능했다. 작은 화면 안에서도 영화는 재생되었고, 유튜브 영상도 끊기지 않았다. 그러나 거실에서 보는 화면은 단순히 영상만 나오면 되는 일이 아니었다. 몸을 소파에 기대고 보면 글자가 작았고, 마우스 포인터는 자꾸 엉뚱한 곳으로 갔다. 영상을 하나 고르려다가 검색창에 글자를 잘못 넣었고, 결국 귀찮아서 화면을 꺼 버리는 날도 있었다.
수리를 해볼까 싶어 사설 수리점을 찾아보았다. 예전 같으면 동네 어딘가에 전파사 하나쯤은 있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납땜 냄새와 오래된 먼지 냄새가 섞여 있었고, 선반 위에는 고장 난 라디오와 선풍기, 브라운관 텔레비전이 쌓여 있었다. 주인은 제품의 회사 이름보다 고장 난 증상을 먼저 물었고, 드라이버 하나로 뒷판을 열어 보았다. 그때의 물건들은 쉽게 버려지지 않았다. 사람 손을 한 번 더 거치면, 물건은 다시 얼마간의 시간을 얻었다.
이제 그런 가게를 찾기가 어렵다. 인터넷으로 찾은 몇몇 수리업체에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대답은 비슷했다. 메인보드 문제라면 부품을 구하기 어렵고, 부품을 구한다고 해도 비용을 생각하면 새 제품을 사는 편이 낫다는 말이었다. 국내 총판 AS센터에도 문의해 보았지만, 내가 산 제품은 수리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자 고장 난 물건보다 그 물건을 샀던 내 판단이 먼저 떠올랐다. 그때 싸다고 좋아했던 마음까지 같이 고장 난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한참 계산을 했다. 처음에는 수리비와 새 제품 가격을 비교했다. 그다음에는 브랜드와 화면 크기와 패널 종류를 비교했다. 다시 화질과 내구성과 사후서비스를 따졌다. 인터넷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빼고, 다른 제품을 눌렀다가 다시 돌아왔다. 가격 비교 사이트의 숫자들은 작은 글씨로 줄지어 서 있었고, 나는 그 앞에서 오래된 습관처럼 싼 쪽을 먼저 찾았다.
젊은 시절부터 나는 가격표 앞에서 오래 망설이는 사람이다. 같은 값이면 더 큰 것, 같은 크기면 더 싼 것, 당장 필요한 기능만 갖춘 것을 고르는 일이 몸에 배어 있다. 그런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월급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가성비는 괜한 체면을 눌러 주는 장치였고, 가족의 생활을 지키는 방식이었다. 싸게 사고 오래 쓰면 잘 산 것 같았다. 조금 불편해도 참을 만하면 그냥 넘어가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마음이 예전처럼 곧장 움직이지 않았다. 화면이 안 켜지는 텔레비전 앞에서 나는 수리비만 계산하고 있지는 않았다. 앞으로 몇 년을 더 일할 수 있을지, 퇴직 뒤에는 어떤 저녁을 보내게 될지, 그런 생각이 중간중간 끼어들었다. 텔레비전 하나를 고르는 일에 너무 큰 의미를 두는 것 같아 스스로 민망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마음 한쪽에서는 자꾸 이런 말이 올라왔다. ‘이 나이에 텔레비전 하나 마음에 드는 것으로 사는 일이 그렇게 큰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가격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꽤 높았다. 나는 결제창 앞에서 몇 번이나 멈췄다. 제품 설명을 다시 읽고, 후기 사진을 다시 넘겨 보고, 할인 금액이 제대로 적용되었는지도 한 번 더 확인했다. 손가락은 결제 버튼 가까이에 가 있었지만 마음은 자꾸 뒤로 물러났다. 예전 같으면 결국 더 싼 제품을 골랐을 것이다. 이번에는 화면 크기와 화질보다도, 수리할 곳을 찾지 못해 이리저리 전화를 돌리던 며칠이 먼저 떠올랐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번에는 가격표보다 오래 쓸 때의 마음을 먼저 보기로 했다.
나는 새 텔레비전을 주문했다. 결제 버튼을 누르는 순간 대단한 사치를 한 것도 아닌데, 마음 한쪽에서 괜히 스스로 눈치를 보았다. 주문 완료 화면이 뜨자 먼저 속이 홀가분해졌다. 그리고 곧, 잘했다는 생각이 따라왔다. 늘 싼 쪽으로만 마음을 접어 넣던 내가 이번에는 내 만족을 한 번쯤 앞세웠다는 사실이 조금 대견했다. 물건 하나를 샀다는 기쁨이라기보다, 오래 미루던 말을 내 입으로 한 느낌에 가까웠다. “그래, 그러자. 죽으면 지고 갈 것도 아니고,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길지도 않을 텐데.” 그 말은 세련되지 않았지만, 그 순간 내 마음에는 그보다 더 맞는 문장이 없었다.
고장 난 텔레비전의 화면에 떠오르던 ‘명령어 없음’이라는 말이 자꾸 생각났다. 처음에는 기계가 내게 보내는 오류 메시지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며칠째 같은 화면을 보다 보니, 그 말 앞에서 나도 잠깐 말문이 막혔다. 나는 오랫동안 아끼고 견디고 미루는 일에는 익숙하다. 반대로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고, 적당한 기쁨을 내 몫으로 받아들이는 일에는 여전히 서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나는 자주 나를 설득하고, 자주 나를 말린다.
새 텔레비전이 도착하면 이번에는 내가 박스를 뜯고 설치할 일은 없을 것이다. 지난번처럼 가성비를 따져 제품을 골라 직접 들고 오던 때와는 다르다. 전문 설치기사가 제품을 들고 와 거실 벽 앞에 세우고, 전원선과 인터넷 연결을 확인한 뒤 리모컨 사용법과 화면 설정 방법을 설명해 줄 것이다. 그는 제품을 사용할 때 주의할 점을 몇 가지 알려 주고, 마지막에는 조금 멋쩍은 표정으로 회사에서 만족도를 묻는 전화가 오면 ‘매우 만족’으로 답해 달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마 웃으며 알겠다고 할 것이다.
화면이 켜지면 제일 먼저 유튜브부터 틀지도 모르겠다. 여행 유튜버가 낯선 골목을 걷는 영상을 보다가, 나는 리모컨을 무릎 위에 내려놓고 화면 크기를 한 번쯤 확인할 것이다. 비싼 것을 샀다고 인생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나는 그때 속으로 한 번쯤 말해 주고 싶다. 잘했다. 이 정도는 사도 된다. 오래 일했고, 오래 아꼈고, 오래 망설였으니 이만한 물건 하나쯤은 그동안의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어도 된다.
나는 앞으로도 아마 쉽게 쓰는 사람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가격표 앞에서 망설이고, 장바구니에 넣어 둔 물건을 다시 빼고, 필요와 욕심 사이를 몇 번이나 오갈 것이다. 그런 내가 하루아침에 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이제는 아끼는 일만 잘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는 않다. 하고 싶은 일을 너무 오래 미루다가, 나중에 그것도 못 해 보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새 화면 앞에서 내가 확인하고 싶은 것은 화질만이 아닐 것이다. 나는 아마 그 화면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며, 남은 날들에는 나를 조금 덜 말리며 살아도 되겠다고 생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