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라면 이야기
유튜브 알고리즘이 넘겨준 영상이었다. 전직 교사 출신이라는 라면 평론가가 카메라 앞에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라면으로 불닭볶음면을 꼽았다. 나는 화면을 넘기려던 손가락을 멈췄다. 매운 음식을 달가워하지 않는 내게 불닭볶음면은 진열대에서 본 적은 있어도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던 물건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맛있기에 저 사람은 저 라면을 첫손에 꼽는 것일까.
마침 미루고 미뤘던 겨울옷 세탁을 맡기러 마트에 갈 일이 있었다. 세탁물 수거 코너에 옷을 맡기고 온 김에 카트를 밀고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온라인 쇼핑에 익숙해진 탓인지 마트의 형광등 불빛과 바퀴 굴러가는 소리까지 조금 낯설었다. 전보다 듬성듬성 비어 있는 매대도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물건을 직접 보고 고르다 보니 손이 갔다.
생선전과 양념 닭강정, 과일 몇 개와 생활용품 몇 가지를 담은 뒤, 나는 불닭볶음면 한 묶음도 카트 위에 올려놓았다.
집에 돌아와 봉지 뒷면의 조리법을 꼼꼼히 읽었다. 물을 끓이고 면을 넣은 뒤, 물을 조금 남기고 소스를 부었다. 검붉은 양념이 면발에 달라붙자 매운 냄새가 먼저 올라왔다. 젓가락으로 한 입을 집어 입에 넣었다. 매웠다. 단맛도 있었고 짠맛도 있었고, 볶음라면 특유의 감칠맛도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내 혀는 그 맛 앞에서 조금 머뭇거렸다. 전 세계인이 열광한다는 맛이 내게는 그저 잘 만든 볶음라면 한 젓가락으로만 남았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잠시 그릇을 바라보았다. 내 입맛이 이상한 것일까. 아니면 나는 이미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에서 너무 멀리 와 버린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내가 살면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라면 한 그릇이 떠올랐다.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이니 40년도 더 전의 일이다. 어머니는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셨다. 월급날이면 어머니는 삼양라면 한 박스를 사 들고 오셨다. 그때 한 박스에는 라면이 쉰 개쯤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그것을 다락방에 올려두셨고, 우리에게 그 라면은 간식이자 밥보다 더 기다려지는 특식이었다.
어머니는 가끔 직원들에게만 파는 상표 없는 통조림도 머리에 이고 오셨다. 철마다 공장에서 만드는 제품이 달랐고, 집으로 들어오는 깡통의 내용물도 그때그때 달랐다. 어느 날 어머니는 재첩국 통조림을 가져오셨다. 보통은 냄비에 부어 국으로 끓여 먹던 것이었는데, 그날 다락에서 라면 몇 개를 꺼냈다. 재첩국 국물에 라면을 끓여 보면 어떨까 싶었다.
냄비에 재첩국을 붓고 물을 그만큼 더했다. 국물이 끓기 시작하자 재첩 특유의 냄새가 부엌에 퍼졌다. 거기에 라면 스프를 풀자 삼양라면 특유의 쇠고기 향이 그 위에 얹혔다. 재첩국의 짭조름한 냄새와 라면 스프의 진한 냄새가 뒤섞이자, 부엌은 금세 다른 집처럼 느껴졌다.
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그날따라 유독 길었다. 동생들과 나는 냄비 앞을 떠나지 못하고 서 있었다. 냄비 뚜껑 가장자리에서는 하얀 김이 새어 나왔다. 국자로 라면을 떠서 4개의 스테인리스 국그릇에 나누어 담았다. 동생들은 라면 면발을 후후 불어대며 먹었다. 창밖에서 무슨 소리가 났는지 동생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그릇 속으로 얼굴을 숙였다.
그 라면은 이상하게 맛있었다. 재첩국의 시원한 맛과 라면 스프의 진한 맛이 섞이자 어린 입에도 보통 국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생들 그릇에 국물이 남았는지 살피고, 거기에 식은 밥을 한 주걱씩 퍼 주었다. 부모님은 그 자리에 없었다.
어머니는 일터에 계셨고, 아버지도 생계를 위해 집을 비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집 안에는 아이들 네 명과 냄비 하나, 그리고 막 끓여 낸 라면 냄새만 남아 있었다.
불닭볶음면 한 젓가락을 먹으면서 그 재첩국 삼양라면을 생각했다. 지금 그 조합을 다시 만든다고 해서 그 맛이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재첩국 통조림을 구하고, 그때와 비슷한 삼양라면을 찾아 끓여도 결과는 다를 것이다. 그때의 맛은 재료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었다. 배가 고팠고, 동생들을 먹여야 했고, 어머니는 월급날에 사 온 라면 한 박스를 다락에 올려두고 다시 일하러 나가셨다.
불닭볶음면은 분명 훌륭한 라면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그 매운맛이 밤늦은 자취방 냄비를 닮았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친구들과 나누어 먹던 편의점 앞 플라스틱 의자를 닮았을 것이다. 아직 내게 그 라면이 불러낼 기억이 없을 뿐이다. 나에게는 재첩국에 끓인 삼양라면 한 그릇이 그런 음식이었다.
나는 그 다락방이 있던 집을 이미 오래전에 떠났다. 다락방도, 거기 놓여 있던 라면 박스도, 그날의 냄비도 이제는 없다. 다만 어머니가 월급날 사 들고 오시던 삼양라면 한 박스를 생각하면, 지금도 스테인리스 그릇이 손에 닿던 뜨거움이 먼저 밀려온다. 그 맛은 아직 남아 있다. 다만 혀끝이 아니라, 그날의 부엌과 동생들의 그릇과 어머니의 빈자리 속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