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국 보다 내장탕
며칠 전, 후배가 자신의 집 근처 해장국집으로 나와 친구를 이끌었다. 우리를 생각해준 후배의 마음이 고마웠고, 국물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숟가락을 놓는 순간, 어딘가 달랐다. 재료가 달라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 국이 놓였던 식탁이 다르고, 그 식탁을 둘러싼 시간이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북구청 위생팀에서 일하던 시절, 외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축산물시장을 가로질러 올 때면 발보다 코가 먼저 시장에 닿았다. 생선 비린내와는 달랐다. 젖은 볏짚 같기도 하고 오래된 가죽 같기도 했다. 그것이 시장 전체에 배어 있었다. 피 냄새와 흙냄새가 뒤섞인, 그 시장 바닥에서만 맡을 수 있는 냄새였다. 처음 맡는 사람이라면 얼굴을 찡그렸겠지만, 내게는 아주 낯선 것이 아니었다.
시장 안쪽에는 고만고만한 크기의 정육점이 줄지어 있었다. 유리문이 달린 냉장 진열대 안에는 붉은 고깃덩이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쇠갈고리에 큼직한 고기가 걸려 있는 가게도 있었다. 정육점 주인들은 회색 비닐 앞치마를 두르고 고무장화를 신은 채 손님을 맞았다. 반면 시장 가장자리 노천에는 낮은 의자와 붉은 고무대야가 놓여 있었다.
그 대야 안에는 새벽에 나온 소 부산물이 수북이 담겼다. 간, 천엽, 곱창, 막창이 선홍빛과 암적색을 섞은 채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상인은 목장갑 낀 손으로 그것을 집어 올렸다가 다시 내려놓았고, 손님들은 허리를 굽혀 색깔과 양을 살폈다. 시장 바닥은 늘 질척했다.
위생공무원의 눈으로 보면 허가는 고사하고 냉장도 하지 않은 채 내장류를 파는 일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풍경이었다. 그러나 관행적으로 난전의 부산물 판매까지 단속하는 일은 없었고, 허가를 받고 영업하는 정육점 주인들도 업권이 엄연히 다르다 보니 난전 상인에 대해 단속을 요청하는 법이 없었다. 단속 여부와는 별개로, 나는 그 앞에서 자주 걸음을 늦추었다. 대야 안의 간은 칼로 막 잘라낸 듯 표면이 반질거렸고, 천엽은 젖은 천 조각처럼 겹겹이 포개져 있었다. 그것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시장의 냄새가 내 안 어딘가에서 다른 냄새와 겹쳐지기 시작했다.
그 냄새가 코끝에 닿는 순간, 기억은 시장 바닥에서 곧장 어린 시절의 부엌으로 건너갔다.
내가 어릴 적 살던 용호동 근처 시장에도 그런 난전이 있었다. 시장 모퉁이 한쪽에 빨간 고무대야가 놓여 있었고, 어머니는 그 앞에서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적당한 것을 고르셨다. 상인은 검은 비닐봉지에 그것을 담아 주었고, 어머니는 손잡이를 단단히 말아 쥔 채 집으로 돌아오셨다. 냉장고는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으니, 새벽에 잡은 물건이 중간 손을 몇 번 거쳐 오전 장에 풀렸을 것이다.
어머니가 그것을 어떻게 손질하셨는지는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우물가에서 오래도록 물소리가 들렸고, 밀가루인지 소금인지로 손질을 했던 것 같다. 물을 갈아 붓는 소리와 칼이 도마에 닿는 소리, 냄비 뚜껑이 덜컥거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남아 있을 뿐이다. 내장탕을 끓이는 내내 어머니는 국자로 기름을 걷어내셨다. 완성된 냄비 안에는 덤성덤성 썬 무와 콩나물, 대파가 내장과 함께 담겨 있었다. 고춧가루가 풀린 국물은 붉었고, 뜨거운 김이 오르면 부엌의 공기가 달라졌다. 시장에서 맡았던 그 냄새는 온데간데없었다.
내장의 맛은 소고기 살코기와는 전혀 달랐다. 씹으면 한 번 밀려났다가 다시 이 사이로 돌아오는 탄력이 있었다. 곱창은 쫄깃했고 천엽은 오독오독 씹혔다. 양은 살코기처럼 아작아작 씹히는 것이 내장이라기보다 고기에 더 가까운 맛이었다. 고기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낯설고, 그렇다고 채소나 생선과도 전혀 다른 그 씹힘이 좋았다. 소고깃국은 엄두도 못 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나는 소고깃국보다 내장탕이 더 맛있었다. 지금도 그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 시절의 밥상이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반찬 몇 가지가 놓였고, 김치가 있었고, 요즘 그릇의 서너 배는 될 법한 스테인리스 밥그릇에 따뜻한 밥이 그득 담겨 있었다. 내장탕이 오른 날은 신이 났다. 형제들이 함께 앉아 있었는지, 아버지가 어떤 말을 하셨는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국그릇 바닥을 긁던 숟가락 소리만은 선명하다. 어머니는 많이 먹으라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내 국그릇이 비면 말없이 국자를 들어 그릇을 채워주셨다.
나는 고무대야 안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청사 쪽으로 걸음을 옮기곤 했다. 정육점 안 냉장 진열대의 살코기와 바깥 난전의 내장 더미는 같은 새벽에서 갈라져 나온 것들이었다. 한쪽은 유리 안으로 들어가 상품이 되었고, 다른 한쪽은 고무대야 속에 담겼다. 어머니가 사 오시던 그 내장도 그런 길을 따라 우리 집 부엌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그 시절의 시장은 법과 생활이 지금처럼 선명하게 나뉘어 있지 않았다. 법령은 종이 위에서 반듯했겠지만, 시장 바닥의 삶은 늘 조금씩 젖어 있고 비켜서 있었다. 나는 그 둘 중 어느 한쪽만 옳다고 말할 수 없었다.
지금 마트 정육 코너의 고기는 투명한 포장지 안에서 가지런히 놓여 있다. 냄새는 거의 없고, 핏물은 흡수 패드에 얌전히 스며 있으며, 중량과 가격은 라벨에 정확히 적혀 있다. 편리하고 위생적인 시대의 풍경이다. 나는 그 변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투명한 포장지 안에는, 새벽 시장에서 막 건져 올린 듯한 생생함도 어린 내가 밥상 앞에서 기다리던 쫄깃한 기대도 함께 사라져 있다.
살림이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 어머니는 시장에서 사 온 내장을 여러 번 씻고 오래 끓여 한 냄비의 저녁을 차려내셨다. 그때의 맛은 혀로만 기억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내장탕을 앞에 두면, 우물가의 물소리와 어머니의 젖은 손, 스텐 국그릇을 긁어서 나는 쇳소리가 함께 떠오른다. 내장탕 한 그릇이 모든 게 부족했지만 정겹던 그 시절로 나를 데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