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류된 연수 일정표 위에 남은 설렘과 허탈함에 대하여
경비지원 요청서를 해당 부서로 송부한 날 오후였다. 전자문서 알림창에 뜻밖의 공문이 떠 있었다. 해외 정바카라연수가 잠정 보류된다는 내용이었다. 몇 줄 되지 않는 문장이었지만, 나는 한동안 모니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처음부터 내가 이 연수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공직생활 33년 동안 이번처럼 정바카라연수를 함께 신청해 보자는 권유를 몇 차례 받은 적은 있었다. 그러나 선뜻 마음이 가지 않았다. 신청서를 쓰는 일도 만만치 않았고, 다녀온 뒤에는 결과보고서까지 남아 있었다.
더구나 팀으로 움직이는 일에는 묘한 부담이 따랐다. 누가 정한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 신청서와 보고서가 내 몫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내가 특별히 바카라임을 맡지 않고 따라만 다녀도 되는 연수라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웠겠지만, 현실은 대개 그렇지 않았다.
바카라상 위의 문서는 매일 새로 쌓였고, 내 이름 앞으로 오는 일은 줄어들 줄 몰랐다. 여행이라는 말은 가볍지만, 공무 국외출장이라는 말은 늘 서류의 무게를 함께 데리고 왔다.
공무와 관련해 해외에 나갈 기회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7년, 시청으로 전입한 지 2년째 되던 해에는 유럽 원자력 안전 관련 선진지 견학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스웨덴을 중심으로 스위스, 독일, 핀란드를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2년 전에는 1년간 장기교육을 받으며 교육 과정의 일환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교육 일정 속에 포함된 연수였다. 이번처럼 뜻이 맞는 사람들과 주제를 정하고, 계획서를 쓰고, 심사를 거쳐 떠나는 정바카라연수와는 결이 달랐다.
2007년 연수의 장면 몇 개는 아직도 선명하다. 독일의 어느 도시에서 비에 젖은 도로 위로 자전거를 타고 가던 남자의 코트 자락, 오래된 건물 벽에 눌어붙은 회색빛, 아침 식탁에 놓였던 딱딱한 호밀빵의 질감이 아직 기억 어딘가에 남아 있다.
이번에 함께 가기로 한 일행 중 한 명은 바로 그때의 인연이었다. 오래전 유럽의 낯선 도시를 함께 걸었던 사람이 공직생활의 끝자락에 다시 한 팀으로 이름을 올렸다. 세월은 사람을 그런 식으로 다시 만나게 한다. 처음에는 단순한 권유처럼 들렸던 그의 말이 시간이 지나자 오래된 인연이 건네는 초대처럼 들렸다.
“퇴직도 얼마 안 남았는데, 마지막으로 같이 한번 가봅시다.”
마지막이라는 말이 오래 남았다. 공직생활에서 그 단어가 붙기 시작하면, 평소에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던 일에도 다른 빛이 생긴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개 한 번이 생각보다 멀리까지 나를 데려갔다.
네 사람이 한 팀이 되었다. 해외정바카라연수는 뜻이 맞는 직원들이 팀을 꾸려 하나의 주제로 기획서를 내고, 심사를 거쳐 선정되는 방식이다. 다녀온 뒤에는 시정 발전에 도움이 될 보고서도 제출해야 한다. 대개 이런 연수에는 자연스러운 역할 분담이 생긴다. 젊은 직원들이 신청서와 보고서를 나눠 맡고, 선배들은 공동 경비를 조금 더 부담하는 방식으로 미안함을 덜어내는 경우가 많다. 오랜 조직생활 속에서 몇 번쯤 보아온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일 앞에서 이상한 징크스가 있었다. 꼭 내 일은 아닌데, 팀으로 움직이다 보면 어느 순간 신청서나 보고서가 내 손에 와 있었다. 누가 억지로 떠민 것도 아니었다. 나 역시 이런 일이 생기면 속으로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 하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문서를 보며 몇 줄을 고치다 보면, 결국 처음부터 다시 쓰고 있는 일이 적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랬다. 나이가 가장 많은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신청서는 제가 한번 써보겠습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었고, 내가 반드시 맡아야 할 의무도 아니었다. 굳이 이유를 달자면 오지랖에 가까웠다. 예전과 달리 팀장이 되고 나서는 직접 실무를 붙들고 있는 시간이 줄어, 마음 한쪽에 약간의 여유도 생겨 있었다. 무엇보다 오래 문서를 써온 사람으로서, 계획서만큼은 내가 제법 잘 만들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계획서를 쓰는 며칠 동안 나는 프라하, 카를로비바리, 부다페스트라는 지명을 자판으로 몇 번이고 불렀다. 온천 자원의 공공관리, 치유 관광과 정신건강의 연계, 도시가 가진 회복의 공간 같은 말들이 문장 안에서 자리를 잡아갔다. 처음에는 낯설던 말들도 밤이 깊어질수록 조금씩 실체를 찾아가는 듯 했다. 해운대와 광안리, 동래온천 같은 이름들이 유럽의 도시들과 문장 속에서 나란히 놓였다. 나는 그 사이에 작은 다리를 놓고 싶었다.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겉으로는 담담한 척했다. 그러나 사무실 사람들의 축하를 받을 때마다 입가가 자꾸 올라갔다. 누군가 “팀장님, 드디어 가시는 겁니까” 하고 말했고, 나는 괜히 서류철을 만지며 웃었다. 나이가 들면 기쁨도 점잖아지는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는 않았다. 오래 참고 있던 아이가 과자 봉지를 받은 것처럼 마음 한쪽이 들떴다.
며칠 뒤 함께 연수를 떠나게 된 우리는 술자리를 가졌다. 조촐한 출정식을 겸한 자리였다. 일행 중 막내가 가성비 좋은 횟집을 찾아왔다. 접시 위에는 회가 넉넉히 올랐고, 젓가락 끝에는 바닷물의 짠맛이 희미하게 남았다. 소주잔이 몇 순배 돌자 누군가는 좋은 신발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고, 누군가는 현지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미리 지도를 봐두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며칠을 들여 여행일정 앱을 만들었다.
일자별 일정을 빼곡히 채웠고, 방문기관과 숙소 연락처, 웹사이트 링크까지 붙여 넣었다. 도보 길찾기 기능도 넣었다. 단체 톡방에 앱을 올리고 나니, 아직 비행기도 타지 않았는데 우리는 이미 일정표 속에서 프라하와 부다페스트의 거리를 몇 번이나 걸어 다닌 사람이 되어 있었다. 화면 위의 지도는 손가락을 따라 움직였고, 낯선 거리 이름들은 어느새 아는 길처럼 보였다.
그 설레발 때문이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해외정바카라연수는 보류되었다. 중동 사태 여파로 해외 공무 출장 전반이 묶이면서 내려온 결정이었다. 공문은 건조했다. 행정적으로는 당연한 판단이었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은 한 박자 늦게 따라왔다.
허탈함은 생각보다 구체적인 모양으로 왔다. 항공편을 검색하던 손가락이 멈추었고, 여권 만료일을 확인하던 메모가 바카라상 한쪽에 남았다. 함께 가기로 한 사람들의 얼굴도 떠올랐다. 연수 일정표에 적힌 도시 이름들은 갑자기 관광 안내 바카라자의 활자처럼 멀어졌다. 프라하도, 카를로비바리도, 부다페스트도 한순간에 화면 바깥으로 밀려났다.
공문 한 장은 출국을 멈추게 했지만, 그 며칠의 마음까지 모두 지우지는 못했다. 며칠 전 아침, 일행들과 커피를 한 잔 했다. 일행 중 누군가 “일정표 짜고 비행기표 예약하고 하다 보니 이미 다녀온 것 같아요.”
다들 웃었다. 그 뒤로도 우리는 만날 때마다 현지에서 놓쳐서는 안 될 장소와 음식, 이동 경로를 이야기했다. 누군가는 꼭 걸어봐야 할 거리를 말했고, 누군가는 시간이 된다면 들르고 싶은 카페를 떠올렸다. 그렇게 우리는 하도 오래 일정표를 들여다보아서, 이미 한 번쯤은 그 길을 걸은 사람들처럼 되어 있었다.
비행기를 타지는 못했지만, 마음은 먼저 출국장을 지나갔다.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지 못한 여행도 사람 안에 흔적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