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도 했는데 정기 구독 좀,,,,,,
점심시간이 임박한 즈음이었다. 엘리베이터 앞이 붐비기 전에 한발 먼저 빠져나가려는 발걸음들로 사무실이 하나둘 비워지던 때였다. 옆자리 팀장의 목소리가 갑자기 조심스러워졌다. 연신 "네, 네" 하다가 말끝이 흐려지더니, 수화기를 내려놓고 피식 웃었다. ○○일보 국장이라는 사람이었다.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전직 간부의 이름을 들먹이며 안부를 물어오더니, 팀장으로 승진하면 시사월간지 한 부 정도 구독이 당연하지 않겠냐고 자연스럽게 흘렸다는 것이다. 알법한 사람의 이름을 들먹였지만, 막상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죽은 사람의 이름을 빌려 산 사람의 지갑을 열겠다는 것인가.
옆에서 듣고 있던 우리 팀 예비사무관이 슬며시 끼어들었다. 자신도 승진 의결 직후 똑같은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신문사 국장, 타계한 선배의 이름, 정기구독. 순서까지 같았다. 얼버무리며 회피하자 그쪽에서 한마디를 남겼다고 했다. 6주 교육 다녀온 후에 다시 얘기하자고. 사무관 교육 일정까지 꿰고 있었다. 그 직원은 02로 시작하는 일반전화 번호를 모니터 한켠에 붙여두었다고 했다. 전화를 받지 않으려고.
승진 명단이 어디서 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화는 언제나 귀신같은 타이밍에 걸려온다.
나는 12년 전 일이 떠올랐다. 6급으로 승진했을 때였다. 오래 막혀 있던 자리를 겨우 뚫은 터라 밥맛도 좋고 잠도 달던 때였고, 지갑은 그에 반비례해서 얇아지고 있었다. 축하한다는 전화마다 술자리가 따라붙었고, 그렇게 쌓인 비용이 몇 백은 됐을 것이다. 기분 좋은 사람은 쉽게 지갑을 연다는 걸, 그쪽은 잘 알고 있었다.
그 전화도 그 무렵 왔다. ○○일보 ○○국장이라며 자신을 소개하더니, 승진을 축하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시청 출입기자 이름을 댔다. 같은 직렬 선배 아무개 주사를 아느냐고 물었다. 속셈을 눈치채고 나서도 바로 끊지 못했다. 함부로 대했다가 불편한 일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말을 이어갈수록 나는 점점 수세에 몰리는 기분이었다. 결국 형편도 어렵고 시사에는 별 관심이 없다며 사정하다시피 했다.
그러자 그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남겼다. "사무관 되시면 그때 꼭 구독해 주세요." 나는 그냥 "네" 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개운하지 않은 결말이었다. 선뜻 끊지 못한 것은 두려운 게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찜찜했다. 그자는 공무원의 그 찜찜함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지나치게 소심한 걱정이었다. 그런데 그 소심함을 작정하고 파고드는 사람이 실제로 있었다.
보건의료 분야에 특화된 소규모 신문사의 기자가 있었다. 그는 어느 날 내가 근무하던 보건소에 직접 찾아왔다. 남의 사무실에서 지나칠 정도로 당당했다. 손에는 증거 사진과 신문 기사 스크랩이 들려 있었다. 그가 자리를 잡고 앉는 순간부터 사무실 공기가 달라졌다. 담당자가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거나 위반 여부를 명확히 말하지 않으면 그의 언성이 높아졌다. 유권해석 자료와 자신의 기사를 들이밀며 공무원이라는 자가 이런 것도 모르냐고 면박을 주었다. 그 순간 사무실 안의 분위기는 공무원이 민원인에게 무언가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뒤집혔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의 무기는 당당함이었고, 목표는 우리를 무능하게 보이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관할 지역의 의료기관과 약국을 돌아다니며 위반인지 아닌지도 불명확한 사소한 법 위반 사례를 찾아내고, 유권해석까지 직접 받아서 보건소에 민원을 넣었다. 의료광고 같은 경우는 해석에 따라 법 위반이 되기도, 그렇지 않기도 한 사안이 많은데 유권해석을 받은 공문을 들이미니 담당 공무원으로서는 처분을 안 할 도리가 없었다. 그날은 한의원 건이었다. 한의사로부터 확인서를 받으며 내 입에서 말이 흘러나왔다. 신문 몇 부를 받아야 할 것 같다고. 누가 시킨 것도, 강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나도 몰랐다. 다음 민원을 막고 싶은 마음이, 생각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나중에 선배들에게 들었다. 그 기자는 명함만 기자였고 실상은 외판원이었다. 관할 지역의 구독 부수에 따라 급여를 받는 구조였다. 사법당국 내사까지 갔지만 그는 신문 구독 외에는 돈도 향응도 일절 받지 않았다. 처벌할 것이 없었다. 법망은 그를 비껴갔고, 그는 그렇게 부산 전역을 계속 돌아다녔다.
세월이 흘렀다. 예전에는 기자라고 쩔쩔매던 시절이 있었다. 공연히 술도 사주고 밥도 사주었다. 그것을 아무도 이상하다 하지 않았고, 그것이 처세의 일부였다. 지금은 다르다. 기자라고 굽신거릴 이유도, 그럴 분위기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전화 한 통 앞에서 머뭇거린다. 따를 이유도 없는데, 선뜻 끊지 못한다.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고 파문을 일으키지 않으려는 습관이, 공직 생활 삼십여 년을 거치며 몸 어딘가에 눌러앉아 있다. 전화를 거는 쪽은 그 찜찜함을 나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그것 하나만으로 먹고산다.
예비사무관의 모니터 한켠에는 오늘도 02로 시작하는 번호가 붙어 있을 것이다. 6주 교육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그 번호에서 전화가 걸려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직원도 아마, 선뜻 끊지 못할 것이다. 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