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입술과 열린 지갑 사이의 적당한 거리
내가 얘기를 했고 직원들은 이따금 고개를 끄덕이거나 짧은 대답을 보탰다. 이야기가 끊길 듯하면 내가 다시 이었다. 며칠에 한 번씩 켜지는 우리 집 TV 이야기, 인공지능을 업무에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몇 년 전 장기교육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를. 시청 팀장으로 발령받은 지 1년 4개월 만에 처음 마련한 팀 회식이었다. 다음 주부터 6주간의 사무관 승진자 과정 교육에 들어가는 직원을 격려하는 자리였다. 최근 발견한 가성비 좋은 횟집을 내가 추천했다. 희고 차가운 돌판 위에 회가 정갈하게 놓여 나왔다. 우리는 그 앞에 둘러 앉아 소주 두 병에 맥주 한 병을 주문했다. 남자 직원 하나가 몇 잔 거들었을 뿐, 여직원 둘은 술을 잔에 채워두고 끝내 입에 대지 않았다. 술은 거의 내가 마셨다. 자리는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자리가 직원들에게는 편한 자리가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비슷한 저녁이 한 번 더 있었다. 1월 말, 난임 치료를 위해 휴직에 들어가는 직원에게 잘 다녀오라며 팀원들과 자리를 마련했다. 그날은 여직원 넷에 남자는 나 혼자였다. 반주 삼아 술 한 병을 시켰지만 직원들은 거의 입에 대지 않았고, 한 시간 남짓 지나 자리는 자연스럽게 끝났다. 그날도 술은 내가 거의 혼자 마셨고, 말도 내가 거의 혼자 했다. 두 번이면 알 만한데, 나는 두 번 다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사실 나도 그런 자리가 편한 사람은 아니었다. 젊은 시절에는 팀장이나 과장이 참석하는 자리에 빠질 수가 없어서 따라나섰다. 잔이 비면 얼른 채워 드렸고, 웃기지 않은 농담에도 때를 맞춰 웃었다. 솔직히 말하면 술자리의 낙은 술보다 안주에 있었다. 윗사람이 있는 자리는 늘 어깨를 굳게 만들었고, 자리가 끝나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쳤다. 그래도 원래 그런 것이라고 믿으며 다녔다.
요즘에는 회식도 저녁보다 점심에 많이 한다. 낮에 술 없이 밥 한 끼 같이 먹고 말자는 것이다. 퇴근 뒤의 시간을 조직에 내놓지 않아도 되는 방식이다. 나는 그것을 조금 늦게 배웠다. 격려라고 생각하며 저녁 술자리를 만들었지만, 직원들 입장에서는 퇴근 후 금쪽같은 두어 시간을 더 내어야 하는 자리였다. 내가 베푼다고 여긴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돌려받고 싶은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
내가 처음 공직에 들어왔을 때 사무실은 거의 남자들뿐이었다. 타자기 앞에 앉은 여직원 한 명과 서무 한 명. 나머지 열대여섯 명은 모두 남자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술자리가 이어졌고, 인사이동에 한잔, 송년회에 한잔, 경조사 뒤풀이에 한잔, 집들이에 또 한잔이었다. 선배들은 말하고, 후배들은 들었다. 나도 그 순서를 밟아 여기까지 왔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무실 풍경은 달라졌다. 성비는 거의 반반이 되었고, 코로나19가 몇 년에 걸쳐 회식이라는 관행을 거칠게 끊어냈다. 감염병이 물러간 뒤에도 사람들은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퇴근 후의 시간을 조직에 바치지 않겠다는 생각은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니게 되었다. 나는 그 달라진 공기를 보아놓고도 한동안 옛 감각으로 사람들을 불러냈다.
세상을 떠난 선배가 있었다. 오랫동안 가깝게 지내던 분인데,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나이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 한다고. 그때는 그저 처세의 요령쯤으로 들었다. 맞는 말이라고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몸으로는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은 제 나이가 되어야만 알아듣는 말이 있다.
후배들이 자기 이야기를 꺼낼 틈을 주고,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고, 먼저 일어나 조용히 계산을 마치는 일. 상대가 부담 없이 집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 그 선배가 말한 입을 닫고 지갑을 여는 일이란, 그런 것이었을지 모른다. 이제 회식 자리에서 내 역할은 그런 것인가 보다.
그날 밤, 혼자 돌아오는 길이 조금 쓸쓸했다. 희고 차가운 돌판 위에 남겨진 생선회가 오래도록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