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날들이 풍경이 되는 순간
높은 곳에 올라서야 보이는 것들
가까이에서는 길이었지만 멀리서 보니 삶이었다. 어떤 날은 지나간 뒤에야 제 이름을 얻는다.
삶에는 그 한가운데에서는 보이지 않다가 조금 멀어진 뒤에야 하나의 풍경이 되는 것들이 있다.
조금 멀리 보고 싶은 날이 있다. 창밖의 나무 한 그루보다 나무들이 한꺼번에 물들어 가는 산을 보고 싶고, 매일 걷는 골목보다 그 골목을 품은 동네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싶어진다.
산에 오르면 조금 전까지 꽤 멀다고 생각했던 길이 뜻밖에 짧게 보인다. 복잡하게 얽혀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 수 없었던 골목도 위에서 보면 서로 닿아 있다.
내가 저 길을 걸어왔구나. 저 모퉁이를 돌았고, 저쯤에서 잠깐 멈췄겠구나. 길 한가운데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멀어지고 높아지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의 삶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한로(寒露)는
'찬 이슬'이라는 뜻을 지닌 절기다.
추분을 지나 상강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밤공기가 차가워지고 풀잎에 맺힌 이슬에도 서늘한 기운이 깃든다. 들에서는 가을걷이가 한창이고, 계절은 풍성함의 절정을 지나 조금씩 겨울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이 무렵은 음력 구월의 중양절과 시기가 가까웠다. 옛사람들은 이 무렵 높은 곳에 올라 가을을 바라보는 등고를 즐겼다. 산에 올라 국화를 바라보고 술과 음식을 나누기도 했다.
한로(寒露)를 들여다보다가 찬 이슬보다 높은 곳에 오른다는 오래된 풍습 앞에서 더 오래 머물렀다.
왜 높은 곳에 오르면
생각이 많아질까.
산 아래에 있을 때는 눈앞의 것들이 크게 보인다. 담장은 높고 길은 길며, 언덕 하나를 넘는 일도 힘겹다. 그러나 산에 오르면 나를 막고 있던 담장은 작은 선이 되고, 끝날 것 같지 않던 길은 마을을 지나는 한 줄이 된다. 길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달라졌을 뿐이다.
삶에도 그런 자리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한창 견디고 있을 때는 내가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어떤 관계의 한가운데 있을 때는 그 사람의 한마디가 왜 그렇게 오래 마음을 흔드는지 헤아릴 여유가 없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는 그것을 얻지 못하면 내 삶 전체가 잘못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눈앞의 일이 너무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면 그 크기가 달라져 있다. 그토록 거대했던 일이 삶의 한 부분으로 놓여 있고, 끝이라고 생각했던 자리 뒤로 또 다른 길이 이어져 있다. 멀어진다는 것은 반드시 잊는 일이 아니었다. 어떤 것은 멀어져야 제대로 보였다.
지나온 날들이 풍경이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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