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갑도, 그 섬의 어두운 그림자

이름 없이 사라진 병사의 혼이 구렁이로 환생했다.

by이광주

1986년 여름이었다. 젊음이라는 이름의 무모함이 용기로 통하던 시절, 우리는 철없이 무인도 여행을 계획했다.

덕적도 서포리 해수욕장으로 여름휴가를 떠나기로 했다가 문득 엉뚱한 상상을 현실로 옮기고 싶어졌다. 영화 속 외국인들처럼 요트 타고 무인도에 들어가 자유를 만끽해 보자는 것이었다. 지도를 뒤져 찾아낸 곳이 덕적도 남쪽 바다에 떠 있는 선갑도였다. 그때는 몰랐다. 그 섬이 평생 잊지 못할 공포와 묘한 여운을 남길 곳이 될 줄은.

인천 연안부두를 출발한 여객선은 외항에 정박한 화물선 사이를 지나 팔미도 등대를 스쳐 남쪽으로 향했다. 아침 햇살을 받은 바다는 거대한 유리판처럼 반짝였다. 두 시간 남짓 달려 덕적도에 도착한 우리는 진리항에서 낚싯배를 빌렸다. 선장은 우리가 선갑도에 간다고 하자 잠시 말을 잃은 듯 우리를 바라보았다.


“왜 하필, 거길 갈라고 그랴? 꼭 가야 혀-?”


돈을 내고 배를 빌리는데도 웬 참견인가 싶었다. 그 눈빛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사흘 뒤였다. 진리항을 떠나 삼십여 분을 남쪽으로 더 달리자 선갑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첫눈에 보이는 건 바다를 가로막은 성벽 같은 절벽뿐이었다. 그런데 섬을 돌아 서쪽으로 접어들자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울창한 숲과 ‘C’자 모양의 해변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섬 입구의 물살은 사납게 소용돌이쳤다. 마치 이방인의 입도를 막으려는 듯했다. 그러나 섬 안쪽으로 들어서자 거짓말처럼 물결은 잔잔했다. 작은 호수에 들어온 듯 고요했다.

선장은 배 댈 곳을 찾으며 연신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우리를 서둘러 내려놓은 뒤 도망치듯 섬을 떠났다.

그 순간만 해도 우리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해변은 완벽했다. 둥글고 작은 자갈이 깔린 백사장, 사람의 흔적 하나 없는 청정한 자연. 우리는 짐을 내팽개친 채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 전체가 우리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해방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야영지를 찾던 중 누군가 무너진 건물 흔적을 발견했다. 잡초와 칡넝쿨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집터가 아니었다. 콘크리트 세면대, 우물, 쇠창살이 남은 지하 공간, 막사 터, 넓은 공터까지. 무인도라고 믿었던 섬에는 분명 누군가의 삶과 시간이 남아 있었다. 누가 이곳에 살았을까. 무엇을 위해 이 무인도에 건물을 짓고 머물렀을까. 알 수 없는 흔적들은 석양과 함께 서서히 불안으로 변해갔다.

밤이 되자 해변은 질흙 같은 어둠에 잠겼다. 대신 하늘에는 조약돌보다 많은 별이 쏟아졌다. 아름답다는 감탄도 잠시, 우리는 모닥불 곁에서 폐허의 정체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감옥 같다는 사람. 특수부대 막사 같다는 사람. 선장이 황급히 떠난 것도 이상하다는 사람. 어둠은 상상력을 키웠다. 근거 없는 상상은 때론 현실보다 더 공포로 다가온다.


새벽녘이었다. “뱀이야!”


비명에 모두가 천막 밖으로 뛰쳐나왔다. 안에는 굵은 구렁이 한 마리가 들어와 있었다. 그 순간 공포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누군가는 불길한 징조라 했고, 누군가는 오히려 길조라 했다. 그러나 누구도 편안하지는 못했다. 철수하자는 말까지 나왔지만. 방법이 없었다. 사흘 뒤 약속한 선장이 오기 전까지 우리는 섬에 갇힌 신세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내일 아침 일찍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자고 제안했다.

등산로조차 없는 산길, 숲을 헤치며 정상에 오르자 서해가 한눈에 펼쳐졌다. 문갑도와 덕적도, 굴업도와 백아도, 멀리 태안반도까지 보였다. 그 광경만큼은 장엄했다. 바람은 거칠고, 바다는 끝없이 넓었다. 잠시 어젯밤의 두려움은 잊었다.


그러나 밤이 되자 공포는 다시 찾아왔다.


파도에 쓸려 자갈 구르는 소리마저 구렁이가 기어 오는 소리처럼 들렸다. 천막 주위에 담뱃가루를 뿌려 놓고서야 겨우 눈을 감을 수 있었다.

약속된 날. 선장은 정확한 시각에 나타났다. 배에 오르자마자 그는 뜻밖의 질문을 했다.


“아무 일 없었어? 군인들은 없고?”


우리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선장은 선갑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래전 미군 첩보부대가 주둔했었다는 이야기. 그와 관련된 구렁이 괴담. 그리고 육군 첩보부대가 들어와 북파공작원을 훈련시켰다는 이야기. 선장이 말한 내용은 우리가 본 폐허와 딱 맞아떨어졌다.

콘크리트 세면대. 막사 터. 지하실. 넓은 공터…. 그것들은 단순한 폐허가 아니라 한 시대의 흔적이었다. 배가 선갑도에서 멀어질수록 아름다웠던 해변보다 그 흔적들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곳에서 훈련받았을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진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살아 있다면 어떤 얼굴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젊은 우리는 무인도의 낭만을 찾아 섬에 들어갔다. 그러나 선갑도는 낭만 대신 이름 없는 병사들의 목숨을 건 힘든 훈련의 흔적을 보여주었다.


지금도 가끔 선갑도를 떠올린다.


눈부시게 아름답던 해변보다 칡넝쿨 아래 묻혀 있던 폐허가 먼저 생각난다. 어쩌면 그 섬의 진짜 주인은 우리 같은 여행자가 아니라, 그곳을 스쳐 간 이름 없는 사람들의 기억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의 기억은 아직도 섬을 떠나지 못한 채, 바람이 되고 파도가 되고 구렁이가 되어 선갑도를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선갑도는 지금도 내게 공포의 섬이 아니라, 잊힌 역사와 그곳에서 훈련받았던 이름 없는 병사들의 고통과 마주했던 섬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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