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난수표다.
숫자의 미로에서 삶을 읽어 본다.
난수표(Random Number Table)라는 말에는 묘한 공포감이 느껴진다. 어린 시절, 시골집 마루에 누워 늦은 밤 AM 라디오를 듣던 기억 때문이다.
“대동강 23호, 대동강 23호. 88222 20000….”
맑고 차가운 여자 목소리가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를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어른들은 그것이 북에서 남파된 간첩에게 보내는 지령이라고 말했다. 어린 나는 그 숫자들이 무서웠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말보다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는 시인의 마음을 숨기고, 그림은 화가의 내면을 감춘다. 그러나 난수는 더욱 난해했다. 아무 의미도 없는 기호처럼 보이는 숫자 속에 어떻게 사람의 의도와 명령이 숨어 있을 수 있는지 궁금했다.
세월이 흐르며 나는 숫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현관문을 들어설 때 누르는 비밀번호, 버스 번호와 지하철 노선 번호, 통장 잔고와 휴대전화 인증번호까지 삶은 숫자의 울타리 안에 있다. 현대문명은 거대한 수학의 반석 위에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숫자는 가까울수록 낯설고 차가운 느낌이다.
우리는 매일 숫자를 사용하면서도 숫자가 어떻게 세상을 움직이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삶이 그렇듯이.
대학 시절 암호학 관련 서적을 뒤적이며 난수표의 원리를 이해하려 애썼다. 그러나 수식과 이론은 내게 또 다른 암호였다. 결국, 궁금증은 먼지 쌓인 바카라갈피 속으로 묻혀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커피숍 대화에서 우연히 간첩 이야기가 나왔다. 잊고 있던 난수표가 기억 속에서 깨어났다. 방치된 바카라장을 뒤져 오래된 노트를 꺼내 보았다. 누렇게 변색된 종이에는 ‘음어표, 난수표, 난수 입히기, 비도(秘度)’ 같은 단어들이 적혀있었다.
잊고 있었던 난수 생성과정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문자를 숫자로 바꾸고, 거기에 무작위 난수를 덧입힌다. 그렇게 만들어진 숫자는 겉으로 보기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나 같은 난수표를 가진 사람에게는 원래의 문장이 된다. 숫자는 의미 없게 보이지만 사실은 수리질서에 의한 문장인 셈이다.
난수에 골몰하다 이상한 생각이 스쳐 갔다.
혹시 인간의 삶도 난수표와 닮아 있는 것은 아닐까. 젊은 날 우리는 모든 일이 인과관계 속에서 움직인다고 믿는다.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하고, 성실하게 살면 행복 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살다 보면 인생은 수학 공식처럼 정답이 정해지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어떤 사람은 뜻밖의 행운을 만나고, 어떤 사람은 이유조차 알 수 없는 불행과 마주한다. 같은 노력을 기울여도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만남과 이별, 성공과 실패, 탄생과 죽음은 예측할 수 없는 난수처럼 우리 앞에 불쑥 나타난다. 그것을 운명이라 부르기도 하고 우연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길게 뒤돌아보면 난수처럼 흩어져 있던 사건들이 하나의 삶을 이루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실직 때문에 시작한 일이 천직이 되기도 하고, 실패한 사랑이 인생을 성숙하게 만들기도 한다. 당시에는 의미 없는 숫자 조각 같았던 사건들이 세월이라는 해독표를 거치면서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드러낸다.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늘 암호문 속에 갇혀 있다. 오늘의 사건은 해독되지 않은 난수일 뿐이다. 그래서 괴롭고 불안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그것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어쩌면 인생의 해답은 사건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한때 나는 난수표의 복잡함에 감탄했다. 그러나 이제는 인간의 삶이 훨씬 더 정교한 암호처럼 복잡하다는 생각이 든다. 난수는 같은 난수표를 가진 사람이라면 해독할 수 있지만, 인생은 누구도 완전한 해독표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 한 줄을 받아 든 채 살아간다.
기쁨이라는 숫자.
슬픔이라는 숫자.
우연한 만남과 예상치 못한 이별이라는 숫자들.
그 숫자들은 지금은 난해한 암호처럼 보인다. 그러나 언젠가 삶의 끝자락에 이르러 뒤돌아본다면, 흩어져 있던 모든 난수가 나의 삶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우연이 모여 결국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