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너머 무지개를 찾아 떠난 아이
무지개는 왜 사람을 설레게 할까
엊그제 무지개를 만났다.
금진온천을 다녀온 뒤 딸, 사위, 두 손주와 함께 탑스텐호텔 15층 카페에 앉아 있었다.
바다는 거칠었고 창밖으로는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무지개를 발견했다.
신기한 것은 무지개보다 사람들이었다.
창가의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고, 어른들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여섯 살, 네 살 손주들은 연신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환호했다.
나 역시 카페 밖으로 뛰어나갔다.
바람은 거셌지만 아무도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무지개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손에 잡히는 것도 아니고,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고, 잠시 뒤면 사라질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무지개를 보면 웃는다.
왜 그럴까.
어린 시절 읽었던 어떤 글이 떠올랐다.
무지개를 잡으러 산 너머까지 가 보고 싶다는 이야기.
그때의 나는 무지개 끝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산 하나만 넘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조금만 더 달려가면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무지개는 잡히지 않았다.
가까이 갈수록 멀어졌고, 닿을 듯하면 사라졌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무지개가 특별한 이유는 잡을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무지개는 존재하는 물건이 아니다.
비가 내리고, 햇빛이 비치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을 때만 나타난다.
하늘에 걸려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바라보는 사람과 하늘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다.
어쩌면 우리는 무지개를 보며 색깔에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세상에 설명보다 경이가 남아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는 것인지도 모른다.
살다 보면 모든 것을 이해하려 든다.
이유를 찾고, 원인을 분석하고, 결과를 예측한다.
그런데 무지개는 잠시 나타나 그 모든 습관을 멈추게 만든다.
그저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잊고 있던 감각 하나를 깨운다.
세상에는 아직도 잡히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
그래서 여전히 설레어도 된다는 것.
무지개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하지만 사라진 뒤에도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뻗던 손주들의 모습과 바람을 맞으며 사진을 찍던 사람들의 뒷모습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생각해 보니
무지개를 보며 설레는 이유는 무지개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 순간 우리는 모두 잠시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 무지개를 잡으러 산 너머까지 달려가고 싶어 했던 자기 안의 아이를 다시 만나게 된다.
어쩌면 무지개는
하늘에 뜨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 잠시 나타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