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강아지와 산바카라해 보셨나요?

by해윤이

여러분은 강아지와 산바카라을 해보셨나요?


어린 시절 마당에서 뛰놀던 강아지와의 추억이 전부였던 제게, 강아지는 늘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싶은 존재였습니다. 날리는 털이 싫어 가깝게 두지 않았고, 강아지를 유난히 아끼는 사람들의 마음도 솔직히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저희 딸아이는 어릴 적, 월트 디즈니의 <101마리 달마티안> 비디오테이프가 지지직거릴 때까지 보고 또 보던 아이였습니다. 강아지가 나오는 비디오라면 테이프가 늘어져 돈을 물어줄 정도로 오래 시청했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바카라 속 강아지 사진을 몰래 오려 서랍에 감추었다가 바카라값을 물어주는 일까지 있었지요. 그렇게 개를 좋아했던 아이였지만, 혹여나 날리는 털이 아이의 눈이나 호흡기에 들어갈까 걱정되어 딸아이가 조르는데도 집에서 강아지 키우는 일을 피하곤 했습니다. 그런 제가 이렇게 강아지와 걷고 있는 모습을 보면 딸아이가 참 신기해할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레 며느리의 강아지 '룰루'를 돌보게 되었습니다.


룰루는 비글입니다. 다른 개들 앞에서는 겁이 많아 슬며시 피하려 하지만, 사람에게는 한없이 친절하고 사교적인 아이입니다. 하얀 털 위에 갈색 무늬가 곱게 얹혀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커다란 하트 하나와 작은 하트 하나가 새겨져 있는 얼룩강아지입니다. 눈매는 한없이 선하고, 숱이 빽빽한 속눈썹이 유난히 예쁩니다. 키도 너무 작지 않은 중형견이라 함께 산바카라을 즐기기에 딱 좋은 강아지입니다.


이렇게 예쁜 룰루와 함께 밖으로 나서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저마다 발걸음을 멈추고 묻곤 합니다. "아이 예뻐라. 강아지 조금 만져봐도 괜찮을까요?"


룰루는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깁니다. 풀밭에 다다르면 풀을 뜯어먹기도 하고, 나뭇가지 사이에서 새들이 지저귀면 슬며시 고개를 들어 바라보며 미소를 짓기도 합니다. 강아지가 웃는 얼굴을 한 모습은, 룰루와 함께 산바카라을 시작하면서 처음 보게 된 기적이었습니다. 산바카라을 하는 내내 룰루의 눈과 입가에는 즐거움이 가득 차 있어, 그 고운 기운이 곁에서 줄을 잡고 걷는 제 마음에까지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가끔 가기 싫은 길을 고집할 때면 처음엔 룰루가 가자는 대로 따라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줄을 살짝 잡아당기면 이내 꼬리를 치며 다시 즐겁게 걷고, "뛰자!" 하고 나지막이 외치면 제 발걸음에 맞춰 천천히 뛰어줍니다. 때로는 강아지를 데리고 나가는 일이 피곤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룰루와 체온을 나누며 걷다 보면 마치 '말없는 다정한 친구'와 길을 거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속상하거나 나누고 싶은 말을 가만히 건네며 걸어도 룰루는 그저 묵묵히 들어주고, 내 발걸음 템포에 맞춰 조용히 걸어주는 영리하고 다정한 아이입니다.


강아지와 산바카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혼자 걸었을 때보다 훨씬 마음이 충만하고 기쁨이 감돕니다. 기분 좋게 혀를 내밀고 숨을 헐떡이는 룰루의 모습을 보면 집안 전체에 활력이 감도는 듯합니다.


우리 집에서는 아들을 '오빠', 며느리를 '언니'라고 부르는 룰루의 호칭을 따라 남편과 저도 소소한 장난을 치곤 합니다. "룰루야, 할아버지와 산바카라하고 와." 하고 말하면 남편은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룰루야, 아빠와 산바카라하고 와." 하면 남편은 "내가 왜 룰루 아빠야?" 하고 짐짓 퉁명스레 되묻지요. 그럴 때 "룰루야, 오빠하고 산바카라하고 와." 하고 슬쩍 바꾸어 말하면,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도 슬그머니 개줄을 고쳐 잡고 밖으로 나섭니다. 그렇게 룰루는 우리 부부의 삶 속에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산바카라을 가자고 떼를 쓰던 룰루는, 제가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하면 제 자리에 가만히 앉아 한참 동안 저를 바라보다가 이내 스르륵 잠에 듭니다.


이제 글을 마쳤으니, 저를 가만히 기다려준 룰루와 함께 둘레길의 가을 풍경을 보며 조용히 거닐어봐야겠습니다.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brunch membership
해윤이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하루하루 경이로운 삶을 기록하는 사람. 23년째 교실 밖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배움의 현장을 지켜왔고, 그 시간 속에서 발견한 삶의 이야기들을 글로 전합니다.

1,921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2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51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2화강아지(룰루)의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