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슬로 왕궁, 독립국가 노르웨이의 중심에 선 왕궁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서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또 다른 왕국, 노르웨이가 나타난다. 긴 해안선과 깊숙이 들어온 피오르, 산악지형으로 잘 알려진 이 나라의 수도 오슬로 중심에는 화려함보다는 단정함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왕궁이 자리하고 있다.
오슬로 왕궁(The Royal Palace, Oslo)이다.
스톡홀름 왕궁이나 드로트닝홀름 궁전과 비교하면 규모도 크지 않고 장식도 절제되어 있다. 그러나 이 궁전에는 19세기 노르웨이가 근대국가로 나아가는 과정과 스웨덴과의 연합, 그리고 1905년 완전한 독립에 이르는 역사가 겹쳐 있다.
노르웨이의 왕정 역사는 천 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 노르웨이는 오랫동안 독립적인 왕국으로 존재하지 못했다. 1380년 이후 덴마크와 결합했고, 나폴레옹 전쟁 이후인 1814년에는 스웨덴과 연합하게 되었다.
하지만 1814년은 노르웨이 근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해였다. 노르웨이는 그해 헌법을 제정했고, 스웨덴과 연합하면서도 자체 헌법과 의회인 스토르팅(Storting)을 유지했다.
따라서 19세기의 노르웨이는 한편으로 스웨덴 국왕을 공동 군주로 두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독자적인 국가 체제를 발전시키고 있었다.
오슬로 왕궁은 바로 이 시대에 건설되었다.
왕궁 건설은 당시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국왕이었던 칼 요한(Carl Johan, Charles XIV John)과 깊은 관련이 있다.
1821년 노르웨이 의회에서 수도에 새로운 왕실 거처를 건설하는 문제가 처음 제기되었고, 이듬해 칼 요한이 직접 왕궁 건설을 제안했다. 설계는 덴마크 태생의 건축가 한스 디틀레프 프란시스쿠스 린스토우(Hans Ditlev Franciscus Linstow)가 맡았다.
1825년 국왕이 직접 초석을 놓으면서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당시 노르웨이의 경제 사정은 넉넉하지 않았다. 공사비가 부족해지면서 1827년부터 1833년까지 건설이 중단되었고, 처음 계획했던 H자형 건물도 보다 단순한 U자형으로 축소되었다.
왕궁의 절제된 모습에는 단순한 미학적 선택뿐 아니라 당시 노르웨이의 경제적 현실도 반영되어 있는 셈이다.
오슬로 왕궁은 신고전주의 건축의 특징을 보여준다.
정면 중앙에는 기둥을 세운 고전주의적 현관이 자리하고, 좌우 건물은 대칭을 이루며 펼쳐진다. 장식은 비교적 단순하고 전체적인 비례와 균형을 강조한다.
베르사유 궁전처럼 절대왕정의 권력을 압도적인 규모로 과시하지도 않고, 드로트닝홀름처럼 화려한 바로크 정원과 장식으로 왕실문화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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