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 왕궁, 북유럽 왕실의 역사와 현재가 만나는 곳
아일랜드의 성들을 지나 이제 북유럽으로 향한다. 스칸디나비아의 왕궁은 프랑스나 오스트리아의 궁전과는 조금 다른 인상을 준다. 절대왕정의 화려함을 과시하기보다 왕실의 역사와 현대 국가의 제도가 한 공간 안에서 공존한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그 첫 번째 장소가 스웨덴의 수도 한가운데 자리한 스톡홀름 왕궁(Kungliga slottet, The Royal Palace)이다.
스웨덴은 오늘날 입헌군주제 국가다. 왕은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는 통치자라기보다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로 기능한다. 그렇지만 왕실의 의례와 전통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스톡홀름 왕궁은 바로 그 역사가 현재형으로 작동하는 공간이다.
스톡홀름은 발트해와 멜라렌호가 만나는 여러 섬 위에 형성된 도시다. 그 가운데 구시가지인 감라스탄(Gamla stan)북쪽에 스톡홀름 왕궁이 자리한다. 바다와 수로, 다리와 오래된 도시 조직 사이에 놓인 왕궁은 도시의 한가운데를 차지하면서도 거대한 독립 건축물처럼 보인다.
오늘날의 왕궁이 들어서기 전 이 자리에는 중세의 방어 시설이 있었고, 이후 트레 크로노르(Tre Kronor, ‘세 개의 왕관’)성으로 발전했다. 스웨덴 왕국의 정치적 중심이었던 이 성은 수백 년 동안 증축과 개조를 거듭했다.
그러나 1697년 대화재로 트레 크로노르 성의 대부분이 소실된다. 현재 왕궁 안의 ‘트레 크로노르 박물관(Museum Tre Kronor)’은 옛 성과 화재 이전 왕궁의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 현재 관람권에는 왕실 대표 공간과 보물관, 트레 크로노르 박물관 등이 포함된다. ([왕궁 슬롯 도움센터][1])
대화재 이후 새로운 왕궁 건설을 맡은 인물은 스웨덴 바로크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 니코데무스 테신 2세(Nicodemus Tessin the Younger)였다.
사실 그는 화재 이전부터 새로운 왕궁을 구상하고 있었다. 당시 스웨덴은 17세기 유럽에서 강력한 군사·정치적 세력을 형성했던 이른바 ‘스웨덴 제국’의 시대를 지나고 있었다. 궁전의 규모와 형식 역시 국가의 위상과 왕권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스웨덴 왕궁 공식 자료에서도 오늘날 궁전의 거대한 규모가 당시 군주의 권위와 국가의 힘을 건축으로 표현하려는 목적과 관련되어 있었음을 설명한다.
건축은 오랜 시간 이어졌고, 현재의 궁전은 18세기 중엽에 이르러 왕실이 입주할 수 있을 만큼 완성되었다. 그 결과 중세 요새였던 장소는 유럽적 바로크 왕궁으로 완전히 변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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