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건축 (왕궁편)-38화

카히르 성(Cahir Castle), 중세의 방어 체계를 간직한 아일랜드

by향지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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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남부 티퍼레리주. 수어강(River Suir)이 흐르는 작은 도시 카히르의 중심에는 거대한 석조 성이 자리하고 있다.

강 한가운데 바위섬 위에 세워진 카히르 성(Cahir Castle)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성은 마치 바위에서 그대로 솟아난 듯하다. 높은 성벽과 탑, 좁은 출입구가 강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이 성이 세워진 목적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카히르 성은 철저하게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앞서 살펴본 킬케니 성이 중세의 요새에서 귀족의 화려한 저택으로 변화했다면, 카히르 성에서는 중세 사람들이 성을 어떻게 방어했는지를 훨씬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까지도 성문과 탑, 성벽, 화살구멍과 여러 방어 장치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카히르 성을 걷는다는 것은 곧 중세의 전쟁 기술을 건축으로 읽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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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 위의 바위섬을 선택하다

성을 지을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했던 것은 위치였다.

중세의 성은 높은 언덕이나 강, 절벽처럼 자연적으로 방어하기 좋은 장소에 세워지는 경우가 많았다.

카히르 성 역시 수어강 한가운데의 바위섬을 선택했다.

강물은 자연적인 해자 역할을 했다. 공격하는 군대가 성벽에 접근하려면 먼저 강과 바위라는 장애물을 넘어야 했다.

13세기 초 이곳에 본격적인 석조 요새가 건설되기 시작했고, 이후 여러 차례 확장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성곽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성의 위치 자체가 첫 번째 방어 장치였던 셈이다.

자연을 이용하고 그 위에 건축을 더한다.

카히르 성의 방어 체계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2. 버틀러 가문과 카히르 성

14세기 후반 카히르 성은 아일랜드 역사에서 중요한 귀족 가문인 버틀러(Butler) 가문의 소유가 되었다.

1375년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는 성과 주변 영지를 제3대 오몬드 백작 제임스 버틀러에게 넘겼다.

앞서 킬케니 성에서도 만났던 바로 그 버틀러 가문이다.

그러나 같은 가문의 성이라고 해서 역할까지 같았던 것은 아니다.

킬케니 성이 점차 가문의 권위와 생활을 보여주는 중심 저택으로 발전했다면, 카히르 성은 오랫동안 군사적 방어 기능을 강하게 유지했다.

15세기와 16세기에 걸쳐 성은 더욱 확장되었고, 새로운 방어시설도 추가되었다.

오늘날 카히르 성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겹의 성벽과 탑, 성문은 이러한 변화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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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문은 가장 위험한 곳이었다

성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은 어디였을까.

뜻밖에도 사람들이 드나드는 성문이었다.

두꺼운 성벽을 아무리 높게 쌓아도 출입을 위해서는 문을 만들어야 했다. 공격하는 군대 역시 당연히 이곳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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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박사과정에서 미학을 전공했으며, 소설쓰는 작가입니다. 아이들과 독서 논술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여, 세계여행관련 글을지속적으로 발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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