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케니 성(Kilkenny Castle), 중세 요새에서 귀족의 저택
아일랜드 남동부, 노어강(River Nore)이 흐르는 킬케니의 중심에는 거대한 석조 성이 자리하고 있다. 둥근 탑과 두꺼운 성벽은 중세의 요새를 떠올리게 하지만, 성 안으로 들어가면 분위기는 사뭇 달라진다. 화려한 응접실과 도서관, 그림으로 가득한 갤러리가 방문객을 맞는다.
킬케니 성(Kilkenny Castle)이다.
이 성의 흥미로운 점은 중세의 군사적 요새가 수백 년에 걸쳐 귀족의 생활공간으로 변화했다는 데 있다. 성은 무너지기도 했고 다시 세워졌으며, 시대의 취향에 따라 모습을 바꾸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약 600년 동안 이곳을 거점으로 삼았던 버틀러(Butler) 가문이 있었다.
킬케니 성을 걷는 것은 하나의 완성된 건축물을 감상하는 일이 아니라, 800년에 걸친 건축의 변화를 읽는 일에 가깝다.
킬케니 성의 기원은 12세기 후반 노르만인의 아일랜드 진출과 연결된다.
노르만 세력은 아일랜드에 진출하면서 주요 도시와 교통의 요충지에 성을 건설했다. 킬케니 역시 노어강을 건너는 중요한 지점이었으며, 주변 지역을 통제하기에 유리한 장소였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석조 성의 기초는 13세기 초에 형성되었다. 당시의 성은 네 모서리에 둥근 탑을 세우고 높은 성벽으로 연결한 전형적인 방어 시설이었다.
성은 아름다운 저택이 아니라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한 군사시설이었다.
높은 벽과 두꺼운 석조 구조, 강을 내려다보는 위치에는 중세 성곽의 목적이 분명하게 담겨 있다.
그러나 킬케니 성의 운명은 방어시설에 머물지 않았다.
14세기 말 킬케니 성은 버틀러 가문의 소유가 되었다.
버틀러 가문은 이후 오몬드 백작(Earls of Ormond), 후작과 공작의 지위에 오르며 아일랜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귀족 가문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킬케니 성은 약 600년 동안 이 가문의 주요 거점이 되었다.
가문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성의 역할도 달라졌다.
전쟁을 막는 요새에서 귀족이 거주하고 손님을 맞으며 자신의 지위와 권위를 보여주는 저택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변화는 단순한 건축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의 기능이 ‘방어’에서 ‘생활과 권위의 표현’으로 이동했다는 뜻이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유럽 슬롯의 변화가 하나의 성 안에 축적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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