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건축(왕궁편)-16화

말보르크 성, 붉은 벽돌로 세운 기사단 국가

by향지소피아

1. 북쪽으로 향하는 길


폴란드 북부로 올라갈수록 풍경이 달라진다.


남쪽의 크라쿠프가 오래된 왕국의 기억을 품은 도시였다면, 북쪽은 보다 차갑고 군사적인 분위기를 드러낸다. 평야는 넓어지고, 하늘은 낮아지며, 강과 습지가 이어지는 땅 위로 거대한 붉은 성벽이 모습을 드러낸다.


말보르크성(Malbork Castle) 이다.


처음 그 모습을 마주하면 이것이 과연 하나의 성인지 의심하게 된다.

성벽은 끝없이 이어지고, 벽돌 탑과 요새 구조는 도시 하나처럼 거대하다. 왕이 거주하던 궁전이라기보다, 거대한 군사 조직 전체를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가 시설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곳은 단순한 왕궁이 아니었다.

중세 유럽의 군사 수도회였던 튜턴 기사단의 중심지였다.


2. 기사단 국가의 탄생


튜턴 기사단은 원래 십자군 운동 과정에서 등장한 독일계 기사 수도회였다. 그러나 그들은 성지 예루살렘에 머무르지 않았다. 점차 발트해 연안과 동유럽 북부로 이동하며 자신들만의 영토와 질서를 구축해 나간다.


말보르크 성은 바로 그 기사단 국가의 수도였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지금까지 지나온 왕궁들은 대부분 왕권과 귀족 문화의 공간이었다.


부다 성에서는 제국의 권위가 드러났고, 바벨 성에서는 슬라브 왕국의 기억이 느껴졌다. 바르샤바 왕궁에서는 폐허 위에 다시 세워진 국가 정체성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말보르크 성의 중심에는 왕이 아니라 ‘규율’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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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박사과정에서 미학을 전공했으며, 소설쓰는 작가입니다. 아이들과 독서 논술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여, 세계여행관련 글을지속적으로 발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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