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 대공궁, 사라진 왕궁을 다시 세우다
발트해 동쪽에 자리한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 도시의 중심인 대성당 광장에 서면 흰색의 단정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리투아니아 대공궁(Palace of the Grand Dukes of Lithuania)이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보는 궁전은 수백 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건물이 아니다. 한때 사라졌던 궁전을 21세기에 다시 세운 것이다. 그래서 이곳을 이해하려면 건축의 아름다움보다 먼저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 질문 속에 리투아니아의 역사가 들어 있다.
오늘날 리투아니아는 발트 3국 가운데 하나인 작은 국가로 인식되지만, 중세의 리투아니아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13세기 이후 성장한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한때 오늘날의 리투아니아뿐 아니라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의 상당 지역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국가로 발전했다. 빌뉴스는 그 정치적 중심지였고, 대공궁은 국가 권력이 집약되는 공간이었다.
현재 궁전이 있는 빌뉴스 하성 일대에는 일찍부터 정착지가 형성되었고, 13~14세기에는 석조 방어시설을 갖춘 성으로 발전했다.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는 중세의 고딕 성이 화려한 르네상스 궁전으로 변모했으며, 17세기에는 초기 바로크 양식까지 더해졌다.
즉 대공궁은 하나의 건축양식으로 완성된 궁전이 아니었다. 고딕에서 르네상스로, 다시 바로크로 이어지는 리투아니아 정치사의 변화가 건축에 축적된 공간이었다.
리투아니아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폴란드를 빼놓을 수 없다.
1386년 리투아니아 대공 요가일라가 폴란드의 여왕 야드비가와 결혼하고 폴란드 왕으로 즉위하면서 두 나라의 관계는 긴밀해졌다. 이후 1569년 루블린 연합을 통해 폴란드 왕국과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을 형성했다.
그 과정에서 빌뉴스의 대공궁은 단순한 지방 궁전이 아니었다. 리투아니아와 폴란드를 통치한 군주들이 머물며 정치와 외교, 문화 활동을 펼친 중요한 왕실 공간이었다. 박물관 측에서도 이 궁전을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정치·문화적 중심이자 당시 중·동·북유럽의 정치적 결정이 이루어진 장소로 설명한다.
그래서 이 궁전은 리투아니아가 유럽사의 주변부에만 머물렀던 나라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건축적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궁전의 운명은 17세기에 크게 바뀌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