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으로 산다는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선생님이 물었다.
넌 뭐가 되고 싶어? 선생님은 어때?
- 선생님은 싫어요. 선생님은 애들한테 욕먹잖아요.
(대답하고 나서 선생님한테 무척 죄송해진 기억이 있다. 지금은 그 선생님을 세상에서 가장 존경한다.)
시간이 흘러 선생님은 되지 않았다. 선생님은 못 됐는데, 누구한테 욕은 먹고 있다. 싫은 소리를 해야 하는 그런 자리, 누군가는 해야 하는 그런 악역을 하면서 말이다.
싫은 소리를 한다는 건 신나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일을 한다는 건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스스로가 너무 비인격적이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밤은 때론 비참하기까지 하다. 나에게 관대하고 남한텐 엄격한 게 아닌지, 꼭 상대방에게 그렇게 말했어야 하는지 후회를 곱씹는 저녁은 나도 모르게 폭 하고 가라앉아버린다.
오늘도 그랬다. 한 직원은 ‘hr이 이렇게까지 하는 게 오히려 비합리적이다 오히려 일을 못하게 만든다’ 라며 공개적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만족이 없고 완벽이 없는 법. 그의 말을 귀담아듣는 것도 맞지만 회사는 지금 단계에서 최선의 결정을 하고 있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 납득이 안 되는.
나도 그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다. 그러면 난 최소한 두세 달 치 야근은 안 했을 거다. 하지만 그와 나의 입장이 다르니 입을 꼭 다물수밖에.
악역을 하면서 배운 것 중 하나는, 상대방을 설득하고 납득시키는 건 정말 어려운 것이라는 것. 때로는 그걸 포기하고 기대도 버려야 하는 때가 있다는 것.
배운 것 두 번째는 내 뜻을 굽힐 수는 없어도 상대방에게 인격적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한 애는 써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일하는 지향점이 군림이 아니라 섬김이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는 것. 컴케과정에서 어떤 말을 골라쓰면 좋을지, 어떤 과정이 누락된 건 없는지 생각해 보면 더 좋았을 것을. 그걸 알았다면 욕을 좀 덜 먹었을 것을.
오늘은 유독 주니어들이 속도 모르고 복도에서 까르르 대는 게 부럽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나는 이 회사가 즐거운 적이 없다. 속 편히 회사를 다니는 날은 올까. 욕을 먹는 게 두렵다고 직업을 바꿔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