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쓴 아저씨는 건드는 게 아니다

유쾌한 아저씨와 일한다는 것

by이러나

드라마 ‘김부장’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안경 쓴 아저씨는 건들지 말자 ‘


안경 쓴 아저씨가 대체 뭔데.


지난해 아저씨들과 일을 했다. 대학생 딸을 둔 50대 부장님, 중학생 딸을 둔 40대 차장님. 공교롭게도 두 분 모두 안경을 썼다.


우리의 전장은 거친 황야였다. 황무지에서 디멘터들에 쫓기면서도 지칠 줄 모르는 척하며 칼날을 휘둘러야 하는 그런 자리. 그때는 그런 자리인지도 모르고 덥석 이직을 했다. 몰랐기 때문에 용감했던 것이다.


그런 전장에서 등을 맞대고 함께 싸운 건 산뜻한 mz들이 아닌 산적 같은 아저씨들이었다. 이 아저씨들을 감히 전우라고 불러도 될까.


한 온라인 게임을 오래 파봤자 기껏 4년 정도인 나는 크고 작은 파도 앞에 서기를 무서워했고, 작게 난 생채기에도 흔들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아저씨들 앞에서 티는 안 냈지만 죄바카라감과 자바카라감과 걱정이 뒤범벅되어 잠을 못잔날이 얼마나 많던지.


그런데 아저씨들은 태평했다. 일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이미 한 회사에 25년을, 17년을 다니니 그들은 이미 얼마나 크고 작은 파도를 넘겨봤을 것인가. 이 정도에는 출렁이지도 않는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바카라임자를 찾아내 문바카라하기보다는 농담이나 위트 있는 한마디를 투척해 분위기를 압살 시켜버린다. 십수 년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일을 이어가기 위한 그들의 윤활제이자 노하우였을테다.


번아웃으로 퇴사를 해본 단거리 선수 출신인 나에게 아저씨들의 위트는 신세계였다. 코웃음을 치고 헛웃음을 치게 만드는,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되 심각한 분위기를 만들지 않는 능숙함과 처세에서 마라톤 장거리 선수들의 여유를 봤다.


내가 회사에서 배워야 하는 건 이런 거였다. 일의 호흡을 길게 볼 것, 그 어떤 것도 감정에 압도당하지 않는 태세를 갖추는 것, 달궈진 상황에서 유쾌함으로 온도를 낮출 줄 아는 여유를 갖는 것,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지 않는 성숙한 태도 그런 것 말이다. 그런 아저씨들과 일한 건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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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 연말이 되고, 우리는 그 전장에서 최후의 싸움을 했다. 나는 스스로를 잃고 정신과 문 앞에 이를 때까지 칼춤을 췄고 첫째 아저씨는 25년중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격전을 했다. 둘째 아저씨는 어떤지 워낙 티를 안내지만 아마 그도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을 거다.


나는 겨우 10개월짜리의 인연들에 칼끝을 겨눴으나 그들은 앞으로 이곳에서 이룰 것과 지금까지 이뤄온 인연들이 송두리째 뽑힐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싸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가정과 생계, 일상도 등에 짊어졌을 것이다.


그들의 상처나 흔들림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는 나는 전혀 모른다. 우린 심각해지지 않았으므로. 물론 나는 힘들었지만 그들 앞에서는 심각해지고 싶진 않았으므로.


그 전장이 끝난 뒤 숨을 고르게 되었을 때 첫째 아저씨는 임원의 등용문에 올라섰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리고 둘째 아저씨는 팀장이 됐다. 나는 나 자신을 반쯤, 아니 2/3쯤 잃고 진급을 했다.


우리는 겉으로 보기엔 모두 잘됐다. 나는 결론적으로 괜찮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싸움 속에서 아저씨들의 유쾌함은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내가 아줌마가 되었을 때도 안경 쓴 아저씨들의 모습들은 기억하고 싶다.


물론 그들이 매우 완벽한 리더나 동료인 건 아니다. 시간이 지나 미화된 부분도 있겠으나, 꼰대 같은 가르침 없이 삶으로 가르쳐준 지혜를 영영 곱씹어 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