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은 인사담당자
그만둘 각오로 글을 쓴다. 이제는 정말 다시는 이 직업으로 돌아오지 않기 위해. 모든 애정과 애증을 글에 담아 미련이 사라지도록 비는 마음으로 글을 쓰겠다.
한번 그만뒀으니 두 번 그만두는 게 어려운가- 어렵다. 신중해진다. 그렇지만 못 할 일도 아니다. 이직 고민을 안 한 게 아니다. 이직으론 해결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이 일을 계속하고 싶은 게 아닌 것 같다.
정말 이제 이 직업을 떠나면 다시는 여기로 못 돌아올 수 것 같다. 또 민망히 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정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면, 매정하게 등져야 한다면 진득하게 돌아보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글을 쓴다.
회사에 인사담당자로 완전히 돌아온 지는 1년 5개월 만이다. 하루만 하루만 버티자 했는데 벌써 17개월, 500일이 훌쩍 넘어버렸다. 입사한 지 3일쯤 되었을 때 다짐했다. 단 하루라도 내가 생각한 기준대로 일할 수 있다면 그때는 미련 없이 이 회사에서 돌아서겠다고.
그러한 지 500일이나 지나서도 나는 내가 생각한 기준대로 살지 못했고, 기준대로 일하지 못했다. 헐떡이며 일하고 싶지 않았는데 늘 헐떡이다 못해 숨이 턱턱 막혀 수갑을 채우고 강제로 출근시켰다. 또 어느 날은 어르고 달래며 출근시켰다. 택시 타고 출근하는 날이 일주일에 서너 일이 되었다. 한 달에 택시비가 매달 15만 원이나 고정적으로 지출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쯤, 이건 심각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지출이 많아서, 소비가 통제가 안 돼서, 단순히 게을러서 정도가 아니라 정말 내 몸과 마음에서 출근을 온 힘을 다해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또 어느 밤은 처절한 불면의 밤을 지냈다. 화병으로 곧 타서 죽어버릴 것 같은 그런 저녁들을 보내며, 옆집에 내 울음소리가 새어나갈까 걱정할 여유조차 없는 새벽을 보내며, 샤워하다가 견딜 수없이 터져 나오는 비명이 물줄기에라도 섞이길 바라는 날들을 보냈다.
어느 날은 얼굴에 경련이 찾아왔고 또 어느 날은 웃는 표정조차 어색해서 이대로 얼굴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건 아닌지 걱정에 빠진 날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상황과 마음들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채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이렇게 처절하게 망가진 게 끝인가. 그만둬야 하는 선은 어디인가.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을 잃은 채로 텅 빈 눈으로 살다가 어느 날은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찾아오면 또 울다 잠들고, 그리고 아침에 다시 출근한다.
그러면 정말 일을 그만둬야 할까. 아니면 나는 일을 초월해서 가야 할까. 그 어떤 것이어야 할지 지금은 모르겠다. 현실적인 이유로 일을 쉽게 그만둘 수가 없다. 그만둘 수 없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지금의 나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것.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중요한 결정을 내리면 실수할 수 있다. 선택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다음을 내가 어떻게 만들어가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타입이었지만, 선택 그다음을 헤쳐나가지 못할 무력한 내가 그려진다. 그래서 감정적인 선택은 내리지 말자며, 후회할 일은 하지 말자며, 이제는 어리지 않으니 바카라임을 져야 한다며 멱살잡이를 하고 있다. 그래, 충동적인 퇴사만큼은 막아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는, 현실적인 이유다. 빚을 갚아야 한다. 지금 일하지 않으면, 지금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직이 아닌 일을 지금 그만둬버리면, 이만큼의 연봉을 다시 받을 수 없을 것 같다는 현실적인 이유들이 떠오른다. 나는 회사를 돈 때문에 다닌다. 솔직히 그렇다.
그리고 세 번째는, 어쩌면 모든 것이 가라앉은 이 상황에서 건져 올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찾지 못한 상태로 그만두고 싶지는 않다. 상황은 언제나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인생은 그렇다. 회피하고 싶지는 않다. 이마팍과 무르팍은 깨졌지만 이렇게 시원하게 넘어진 김에 뭐라도 줍고 일어나야겠다.
인생에서 풍랑이 찾아왔을 때 그걸 넘어갈 줄 아는 능력, 성숙함이 나에게 필요한 듯한데 이 스테이지를 넘어가지 않은 채로 회피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배워야 하는 게 의젓함이면, 성숙함이라면, 지금 배우고 가야 한다. 이 성장과제를 직면하고 성장해서 알을 깨고 나가야 한다. 이다음 챕터로 넘어가기 전에 제대로는 싸워봐야 하지 않겠나.
어찌 되었든, 내가 선택한 첫 직업에 대해 미련을 남기지 않기 위해 헤어짐을 다짐하며 쓴다. 그리고 살고 싶어서 글을 쓴다. 그리고 이 글이 가능하다면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면 좋겠다. 나를 살리고 또 누군가를 살리고.. 최소 한 명은 살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