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늘 겪고 나서야 알까

겪고 나서야 비로소 아는 것들

by혜준

봄방학 내내 앉은뱅이바카라상같은 고타츠(こたつ)*에서 온라인카지노랑 놀아서일까.

플랭크를 매일 3분 이상 한 탓일까.

허리가 너무 아프다.

이제까지 살면서 신체의 어느 부위가 이렇게 오랫동안 아팠던 기억은 없다.

운동을 하면 근육통이 오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배가 아픈 정도였는데 이번엔 조금 길다.

계단을 내려갈 때도 아프고 허리를 굽혔다가 펴는 순간 아프고 운동화 끈은 항상 서서 묶었는데 그게 안된다.

아까는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들려고 하는데

"윽!"

도저히 들 수가 없어서 아들에게 부탁을 했다.

이 정도도 못 들 정도로 아프냐고 세탁 바구니를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 올리며 아들이 걱정을 해 준다.

파스를 붙여도 안 되고 약을 먹어도 아프다.

파스 붙여주던 남편은 아침부터 테니스 시합이 있다고 집에 없다.

개똥 아저씨... 필요할 땐 없는...

남편이 테니스로 엘보가 왔을 때 난 놀다가 아픈 거니까 자업자득이라며 손톱만 한 연민도 보여 주지 않았다.

이렇게 꽤나 아팠던 거구나...

내가 아파 보니 상대의 아픔이 이해가 간다.

조금 미안해진다.

나는 늘 이렇게,

겪어 보고 나서야 알게 된다.

오늘 시합에 져서 고개 푹 숙이고 오든, 이겨서 잘난 척하면서 오든, 돌아오면 일단 파스부터 툭 던져주고(내 허리에 붙이라고), 그 다음에 슬쩍 어깨라도 좀 주물러 줘야겠다.

그게 다 겪어본 사람만이 줄 수 있는 미안함 섞인 처방전일 테니까.



온라인 게임에서 내가 마음을 열고 지내는 단 한 사람의 동료가 있는데 방학 동안 뭐 했나고 묻기에 그녀에게만 살짝 온라인카지노에 대해 털어놓으니, 드디어 sns 데뷔냐고 깔깔댄다.

응? 온라인카지노가 sns라고?

난 이제껏 온라인카지노를 sns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녀의 말을 들으니, 자기의 날것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그 공유의 결과로 라이킷이나 댓글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누군가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sns활동이라는 것이다.

へえ~(헤에~)

난 육아서적이나 스마트폰의 폐해를 경고하는 바카라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sns는 무조건 슬롯악이고 아이들에게는 자나 깨나 인스타와 트위터(지금은 X라죠?) 금지령을 내리곤 했다.

그저 한 번 빠지면 큰일 나는 것으로만 알고 있던 그 sns에,

온라인카지노도 포함된다고?

이 좋은 걸 왜 이제까지 모르고 살았나 했는데....

그녀는 자긴 sns에 너무 시간을 빼앗기고 여러 일들이 있어서 이젠 하지 않는다며 나에게 너무 빠지지 말고 잘 조절해서 하라는 조언을 해 주었다.

게으른 주제에 계산적이라 난 잘할 거라고 그녀에게 큰소리를 떵떵 쳤는데, 갑자기 조금 무서워진다.

아이들의 휴대폰에 인스타나 X의 어플이 보이면 당장 삭제하라고 하던(애들 절대 말 안 들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될 줄이야....



30대 초반에는 동생과 같았던 학생들이, 어느덧 세월은 흘러 흘러 이제는 내 자녀와 같이 느껴지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아마도 손주를 가르치는 마음으로 이들을 접하게 되리라(그전에 퇴직을 할 수도 있지만... 나는 늙은 선생님이 싫어요! 이승복 어린이와 같은 용기 있는 학생이 나타나면 난 사라져야겠지).

부끄러운 기억이긴 하나, 젊었을 때는 아침 1교시부터 푹 퍼져서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답답해서 너희들 이러면 난 수업 못해!! 하고 문을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젊었을 때는 열심히 하지 않는 학생들이 이해되지 않았고, 지적을 애정이라 믿으며 학생들을 닦달했다.

그리고 내가 만약 부모라면 이렇게라도 엄격하게 지도해 주는 선생님을 고마워할 거라고 확신했었다.

속상한 마음에 언니에게 전화로 하소연을 하고 있자니 당시 아이들을 키우고 있던 언니가 가만히 듣고 나서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집중시키는 것도 선생님의 역할 아닐까?"

한다. 그... 그런 거야?

그 이후로 나는 두 번 다시 그런 경솔한 행동을 하지 않게 되었지만, 내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난 진심으로 언니의 조언에 더더욱 감사하게 되었다.

만약 우리 아이들이 내가 어디서나 자랑할만한 공부도 잘하고 선생님들께 애교도 많은 우등생이었다면, 아마 난 내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세상 둘도 없는 거만한 엄마와 선생으로 살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른바 엄친딸, 엄친아가 아닌 우리 아이들 덕분에 나는 엄마로서 선생으로서 겸손과 공감을 배우게 되었다.

지금 엄마로서의 나는, 내 아이들의 선생님이 많이 부족한 내 아이들을 엄하게 추궁하기보다는 따뜻한 격려와 사랑으로 대해 주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이 마음 그대로 선생으로서의 나도, 내 모든 학생들을 대하려고 노력한다.



왜 나는 다 겪어 본 후에야 겨우 알아차리게 되는 걸까.

간접경험이라는 것도 있어서 현명한 사람들은 상상력과 통찰로 삶을 잘 살아간다고 하더구먼...

다음엔,

겪기 전에 조금이라도 알아차릴 수 있기를.



단,

지금 나에게는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게 있다.

엄마가 가끔씩 한탄하듯 이야기하는 "내가 너희를 어떻게 키웠는데..." 레퍼토리이다.

물론 엄마가 생색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안다.

자주 연락을 안 하는 자식들에 대한 섭섭한 마음에 털어놓는 하소연이라는 것도 잘 알지만, 그걸 혼자 삭이지 못하고 드러내는 게 너무 부담스러웠다.

이건 내가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더더욱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떻게 키우긴 어떻게 키워? 아이를 낳았으니 당연히 키워야지. 그것도 아이들이 원해서 태어난 게 아니니 바카라임감을 가지고 아이들이 자립해서 잘 살 수 있도록 서포트하는 게 부모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 아닌가.

그걸 마치 희생처럼 생색내며 말하는 게 너무 싫었다.

난 절대 안 그럴 거야!

라고 지금은 생각하고 있지만...

"너도 애들 다 키우고 혼자 있어 봐라"하는 엄마의 저주 섞인 말에는 조금 흔들린다.

응가인지 된장인지 반드시 꼭 찍어서 입에 넣어 봐야 깨닫는 이 고집스럽고 어리석은 내 행동 패턴으로 보아, 역시나 내가 우리 아이들을 다 떠나보내고 혼자 거실에 오롯이 앉아 있어 보지 않으면 도저히 실감하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아이들이 떠난 거실에 남편과 마주 앉아서

"내가 저희를 어떻게 키웠는데.... 괘씸한지고...." 하다가

"아항! 엄마가 그때 한 말이 이 말이었구나.... 하늘에 먼저 가 계신 엄마 죄송해요..."

하면서 눈물 찍 신파 한 편을 연출해 낼지도 모를 일이다.




*こたつ(炬燵 [kotatsu]): 나무 탁자 아래에 전기 히터가 붙어 있고, 그 위에 전용 이불을 덮은 뒤 다시 상판을 올리는 형태로 온돌이 없는 일본 가옥에서 겨울을 지내는 난방기구입니다. 유래는 무로마치 시대의 이로리(囲炉裏, いろり [irori], 바닥을 파서 만든 화로)에서 시작되었는데, 화로 위에 나무틀을 세우고 이불을 덮어 열기를 가둔 것이 고타츠의 조상인 '호리코타츠(ほりごたつ [horigotatsu])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