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그쪽”이 되는 순간
나는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거나 혼을 낼 때는 가능하면 납득할 만한 이유를 들어가면서 이해시키려 애썼다. 감정적이 되는 일도 있지만, 그 감정도 사실은 엄마의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근거가 있는 감정이라는 것을 주장했다.
한마디로 피곤한 스타일이다.
그냥 잘못된 행동에 대한 지침을 간단히 이야기하고 끝내면 될 것을 상대방이 납득해서 "당신이 맞소"라는 지점에까지 몰고 가려는 버릇이 있다. 결국 나의 정당성을 상대에게 밀어붙이는 것이다.
당시에는 아이들이 납득해서 억울한 감정을 갖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야말로 아이들 정서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이 아이들의 변명과 핑계를 부추기는 원인이 되었다는 걸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문다고 했던가.
빠져나갈 구멍 없이 포위를 하고 잘못을 인정하라고 몰아붙이는 엄마에 대한 아이들의 도전이 시작되었다.
자신들의 잘못은 인지하면서도 엄마의 논리나 설득에 의한 인정만은 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아마 15,16년 한 지붕 밑에 살면서 엄마도 실수 투성이라는 것, 어쩔 땐 엄마의 말도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을 관찰과 성장으로 깨닫게 되었으리라.
내 지적에 고분고분해지지 않게 되면서 딸과 몇 번 언쟁을 벌인 일이 있다.
그럴 때, 내 공세에 말이 막히면 딸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단어와 대사가 있다.
먼저, 호칭이 "ママ"([mama] 엄마)에서 "そっち"([socchi] 그쪽)으로 바뀐다.
그리고, 연달아 이어지는 대사는 "関係ないでしょ"([kankeinaideshyo] 관계없잖아, 상관하지 마)이다.
숨이 턱 막힌다.
"그쪽"? "관계가 없어?"
자업자득(自業自得 [jigoujitoku])이라는 건 안다....
내가 아이들에게 사랑보다 바카라임과 의무에 무게를 실은 탓이다.
내 몸이 힘들 땐 가까이서 치대는 아이를 살짝 떨어뜨려 놓고는 조용히 바카라을 읽도록 유도했다.
어릴 땐 말없이 알아서 자기 일을 척척하는 아이를 대견해했으면서 이제와서는 아이가 혼자서 결정해 버린다고 서운해하고, 조용히 자기 공간에서 할 일을 하고 있는 아이가 수상하다고 투덜댄다.
딸아이도 그랬다. 자업자득이라고...
건강검진의 통지가 날아와도 귀찮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나에게 딸이 한 말도
"병에 걸려도 자업자득이니까"였다.
엄마를 걱정하는 다른 표현이라는 걸 알면서도 가슴 한 구석에서 찬 바람이 불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아이들이란 어떤 존재이며, 아이들에게 있어서 난 어떤 존재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본 것은.
내가 아이들을 빨리 제출해야 할 숙제, 빨리 갚아야 할 대출금처럼 생각하고 있는 한, 아이들도 엄마아빠와의 삶을 자립을 위한 숙제, 살아 있는 동안 꺼내 써야 할 은행 ATM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을까.
부모라는 "역할"을 내려놓고, 한 사람으로서 아이들을 마주 대하겠다고 다짐했다.
비록 오늘도 딸의 모의고사 성적표 앞에서 그 다짐이 여지없이 무너졌을지라도 말이다.
아직도 시행착오 중이지만,
내가 낳은 내 아이들이니까.... 가 아닌
열여섯 해, 열 다섯 해를 살아내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 バカ([baka] )는 '바보'라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