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안아 줘
중학교 2학년 때였던가.
나를 포함해 네 명이 친했는데, 그중 한 친구가
"넌 계산적이야"
라고 했던 말을 난 아직도 아프게 기억하고 있다.
싸운 것도 아니고 친구가 악의를 가지고 말했던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리고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가끔씩
떠오르는 걸 보면 상당한 상처였던 것 같기도 하다.
당시 난 그 말 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따질 용기도 없었다.
계산적? 나 수학 무지 못하는데 무슨 계산?
사실은 지금도 잘 모르겠다.
'계산적'인 게 무엇인지......
그 애가 나의 어떤 면을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먼저 정을 주지 않고
상대방이 다가오는 만큼만 나도 다가가는 그런 걸 말하는 건가?
요즘 계절을 타는 건지, 몸이 피곤한 건지,
뭐 딱히 불편한 일이나 고민은 없는데
마음이 쨍하고 맑은 느낌이 없고 무겁고 흐리다.
자신감이 없어진 걸까, 외로운 걸까,
다들 하하 호호 끼리끼리 잘 노는데
나 혼자 똑 떨어져 있는 이 느낌.
뭐지?
나이를 거꾸로 먹나?
일 끝나고 마트에 가서 저녁거리를 준비해야 하는데
몸도 마음도 기력이 없어서인지
뭘 사러 가는 것도 귀찮기만 해서 집으로 직행했다.
아이들 저녁은 집에 있는 걸로 만들어 주고 나니
남편이 퇴근을 한다.
배 째라......
나가서 먹자고 하는데 그것도 귀찮다.
내가 쨍쨍거려도 오구오구 달래주거나
다정한 말로 위로해 주는 건 오글거려서 못하는 남편.
무심하기도 하고 얄밉기도 한 그가
나를 한 번 보더니
아무 말 없이 장바구니를 주섬주섬 챙겨서 나간다.
마트에 갔다 온 남편의 장바구니에는
모둠 회 한 접시, 두부 한 모, 달걀, 명란젓, 요구르트,
내 호두빵, 딸 아이스크림, 아들 초콜릿이
질서 없이 담겨있다.
갑자기 울컥한다.
"나 안아 줘"
하니 뜨악하는 남편.
나도 내가 웃기다.
나 이런 거 못하는 사람인데......
어색한 허그.
내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아무 생각 없이 다가갈 수 있고
아무 생각이 없이 받아 줄 수 있는 사람.
이런 관계를 계산적이지 않다고 하는 걸까.
아니, 난 내가 좋아하는 사람 모두에게
다 이렇게 대하고 싶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내 마음을 나누고 싶다.
그리고 상대방도 그럴 거라고 믿고 마음을 열고 싶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된다.
계산적인 내가
지금 이렇게 계산이 안 될 정도로
흔들리고 있는 건
오늘따라 파란 가을 하늘에
바람이 유난히 세게 불어서일까.
오늘, 이 계절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