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아차아~ 젓가락!"
복도를 걸어가다가 가방에 벤또만 딸랑 넣어가지고
왔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우뛰...... 사흘 전에도 젓가락을 안 챙겨 왔었는데.
그때는 일부러 편의점까지 가서 필요도 없는 커피를
사면서 젓가락을 하나 받았다.
그런데, 오늘 이 학교는 캠퍼스가 워낙 넓어서
편의점까지 가려면 한참을 가야 한다.
학교 식당에서 줄을 서가면서 먹을 마음은 나지않는다.
잠시 고민하다가 오늘은 점심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을 먹었는데 왜 배는 안 부른 거?)
수업은 4시 50분이면 끝나니까 버텨 보자.
몸이 가벼워서 덜 졸리고 오히려 좋을지도 몰라.
길어져버린 점심시간에
옆에서 후루룩 짭짭 맛있게 식사를 하시는 선생님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가여운 꽃제비 아가의 심정이 되어 본다.
아...... 맛있겠다.
내 옆 선생님은 샌드위치를 사 오셨네?
어구구...... 샌드위치 속 햄을 떨어뜨리셨다.
에그...... 아까워라.
저쪽에서는 유려한 프랑스어를 구사하면서
세 분의 선생님이 식사보다 맛난 대화를 나누신다.
맞은편에서는 선생님 두 분이 독일어일까,
무표정한 얼굴로 두런두런 말씀을 하시며
사랑하는 아내가 싸 주신 벤또를 서투른 젓가락으로 드신다.
심각한 표정으로 노트북을 펼쳐 놓고
빵을 우물거리는 터프가이 선생님도 계신다.
건강 상해요, 선생님.....
내가 밥 먹을 때는 주위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먹었는데 이렇게 관찰을 하고 있으니 재미나다.
나도 금요일은 두 분의 한국어 선생님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동포(同胞)들인지라,
아마 상당히 소란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조심해야지.
그나저나, 가끔 이런 일탈도 괜찮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만약 내가 아이들 벤또에 젓가락을 깜빡했을 때
아이들이 나처럼 벤또를 그대로 집에 가지고 온다면
난 어떤 반응을 할까에 다다른다.
도시락을 '안' 먹었다는 판단보다는 '못' 먹었다고
멋대로 판단해 버리진 않았을까.
젓가락 하나 구할 수 없는 주변머리 없는 녀석들이라고,
커서 우짤꼬......
하고 또 불안이 つなみ(쓰나미)처럼 몰려오겠지.
그리고 불안한 나머지 설교가 시작되지 않을까.
아이들의 말을 듣기도 전에 말이다.
그럴 땐 어쩌고저쩌고, 그러니까 울라불라......
생각만 해도
이런 내 모습에 정말 짜증이 津波(쓰나미)처럼 몰려온다.
제발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을 해 본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했던가.
모처럼 배고픈 배에 제대로 된 정신이 깃든 것 같다.
그나저나
배가 부르면 또 똑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을 텐데
이를 어쩐다?
계속 굶어야 하나.
쪼르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