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사세요! 떡!"

누군가를 안다는 것

by혜준

며칠 전 아이들의 학교 축제가 차례로 끝났다.


고2인 딸은 반별로 정한 각 나라의 간단한 요리를 교실에서 판매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한국 요리(?)도 포함되어 있어 한국 요리 유치를 위해 각축전을 벌였다고 했다.

(딸 반은 중국 요리가 당첨되었다)

배보다 배꼽이라고 음식보다 교실을 그 나라처럼 꾸민다고 축제 며칠 전부터 부산스러웠다.

고1인 아들은 반에서는 귀신놀이를 돕고, 동아리에서는 경단을 판다고 했다.


딸은 올해가 고등학교에서의 마지막 축제였기 때문에, 주말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갔다 왔다.

아들은 망설이다가 에이...... 내년 마지막 축제 때 가면 되지! 하고 결국 안 갔다.

그런데,

축제가 끝난 날, 아들이 엄마 왔으면 좋았을 텐데...... 한다.

이제까지 그런 말 한 적이 없었는데......

내가 왜? 하고 물으니

경단이 하도 안 팔려서 동아리 고문 선생님이 걱정하시길래, 자기가 큰 소리로 손님을 불러 모았다고 한다.

야키소바나 우동을 사려고 길게 줄을 선 손님들이 자기의 외침에 이끌려 경단을 사기 시작했고, 15분 만에 경단이 다 팔렸다고 한다.(혹시 경단이 서너 개밖에 없었나?)

자신의 활약상을 봤어야 했다는 거다.


뭐? 네가 큰 소리로 손님을 불렀다고?(이른바 '삐끼'?)

평소 자기 긍정감이 낮고 덕후 기질이 다분한 데다가 친척들 앞에서도 쭈뼛거리기 일쑤인 아들이 '삐끼'를 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서 할 정도로 창의력이 있는 아이도 아니고, 나에게 그런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으니 사실인 것 같긴 한데......


그렇다면 이 녀석, 의외로 넉살이 좋은 거?

학교 성적이 그 모양(무슨 모양? 꽃 모양...)인데 주눅 드는 것도 없이 친구랑 사람들 앞에서 잘도 큰소리로

"떡 사세요! 떡 사세요!"

를 외쳤구나....

물론, 떡 파는 것과 성적과의 연관성은 전혀 없다.

다만, 내가 아들에게 가진 이미지는 어디서나 존재감이 별로 없이, 조용히 한쪽에서 꼼지락거리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하는 아이라서, 모두가 곤란한 상황에 자진해서 앞에 나선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딸도 이에 질세라 자기도 '접객'이 의외로 적성에 맞는 것 같다고 한다.(얘는 다른 사람에게는 라이벌 의식을 전혀 갖지 않으면서 동생에게만은 엄청난 라이벌 의식을 느낀다. 쯧쯧쯧...... 실속 없이)

이건 또 뭐야?

그 좋아하는 이모가 와서 말을 걸어도 배실배실 웃으며 몸만 배배 꼬던 네가 '접객'을 했다고?


뭐지? 이 남매는?

아니, 나야말로 뭐지? 내가 엄마 맞나?

내가 이제까지 아이들을 제대로 보고 있기나 했던 건가?


이래 봬도 나는 자칭 반관상쟁이이다.

30년을 몇 년 남겨둔 지금까지 매년 400여 명이 넘는 학생들을 접하면서 터득한 노하우(?)와 축적된 데이터(??)와 내 '촉(???)'으로 나름 학생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고 자부하던 나였다.

굳이 시험을 보지 않아도 한두 달 수업을 해 보면 성적이 나온다고 잘난 척하던 나였다.


그런데, 이런 내가 내 뱃속에서 나온 아이들에 대해서는 어찌 이리 맹탕 모를 수가 있단 말인가.

내 노하우도 데이터도 그 잘난 '촉'도 내 새끼에게는 아무런 효력이 없는 것인가.

너무 가까워서 안 보이는 걸까?


하긴, 내가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엄마가 가장 놀랐던 것 같다.

고등학생 때까지 친척들이나 손님이 오면 커튼 뒤에 숨어서 나오지 않고 인사도 제대로 못하던 네가??


근데 또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가장 놀라고 있는 건 바로 나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처음 보는 학생들 앞에서 낯가림도 없이 떠들어댄다.

그것도 모국어도 아닌 외국어로.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이제까지 너무나 가까워서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을

다 안다고 믿고 있지는 않았는지,


아이들의 낯선 모습에서 새삼스레 나 자신의 낯선 모습도 발견한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나저나, '삐끼' 아들이 손님을 모아 오고,

'접객퀸' 딸이 손님을 접대하게 되면 한몫 단단히 잡을 수 있을 지도.

딸 학교에서 각축전을 벌였던 한국 요리를 함 해봐?

쓸데없는 고다와리(こだわり, 집착)만 있는 남편은 주방에 배치하고

숫자와 계산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내가 카운터에 서 있으면

완벽한 가족 경영 구도가 아닐까 싶은데.....


이참에 부자나 한 번 돼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