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장불입(落張不入)

다 꼼짝 마!

by혜준

오랜만에 남편과 멋지게 싸움 한 판 했다.


항상 사용하는 카드의 결제가 되지 않았다.

알아보니, 통장에 잔액이 조금 부족해서 카드 값이

빠지지 않아 사용 정지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안 그래도 며칠 전에 둘이서

잔액이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고 안심하고 있던 참이었다.

난 숫자 개념이 너무 없어서

세금이나 아이들 학비 기타 경제적인 것들을

남편에게 일임하고 있다.

이건 예상보다 카드 사용액이 많았다는 것 외에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고 다음부터 조심하면 될 일이라

처음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퉁명스럽게


"거 봐, 내가 돈 좀 더 넣자고 했잖아"


라는 게 아닌가!

헐...... 당신이 언제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나요?

머릿속으로 생각한 걸 말을 했다고 착각을 하시나요?

그렇게 생각하셨음 당신이 돈을 좀 더 넣어 두시던지?


나는 잘못을 했으면 바로 인정하는 편이다.

반면,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면 끝까지 굴하지 않는다.

(독립투사 납셨네)

이 상황을 은근히 내 잘못으로 뒤집어 씌우려고 하는

남편의 그 말 한마디에 신경이 삐릿! 하고 곤두섰다.

한 마디 투척하려다가

나중에 서로 감정이 가라앉으면 그때 차분히 해야지

하고 대인배답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갈고 닦은 수양 덕에

싫은 감정에서 마악 벗어나려고 할 때쯤이었다.

남편이 여전히 기분 상한 말투로


"통장에 돈 더 넣어 둬"


라고 명령(!)을 하는 게 아닌가.

우뛰, 이런......

빠지직!!!! 내 안의 참을 忍,

인내 주머니에 금이 가는 소리가 났다.

여, 여보셔요?

통장 관리는 이제까지 당신이 하셨으면서

지금 왜 갑자기 나에게?

그리고 무슨 말투가 그 모양이죠?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건가?

내가 당신의 자녀인가?

어쩌자고 그리 명령조인가!

말하고 있는 나도 놀랄 정도로

줄줄이 사탕으로 공격적인 말이 끊이질 않는다.

평소에 뭐가 많이 쌓여 있었나?


자기는 아무 생각 없이 한마디 툭 했는데

갑자기 大怒를 하는 나에게

남편은 놀라기도 하고 무안하기도 했는지,

평상시에는 내가 삐쭉대도

어디서 멍멍이가 짖나......

하며 피식거리던 여유로운 남편이

제법 진지하게 맞선다.

이 반응에 나도 또 놀라고 무안해서

지지 않고 멍멍댔다.


이 소란에 아들이 방에서 홀연히 나오더니


"우루사이나(うるさいな, 시끄러워라),

긴죠메이와쿠다요(近所迷惑だよ, 이웃에 민폐야)"


라고 근엄하게 한 마디 한다.

호환, 마마보다 자식이 더 무섭다고 했던가.

아들의 말에 우리 둘은 조용히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 앉았다.


잠시 후, 학원에서 돌아온 딸이

평상시와 다른 엄숙한 집안 분위기에 놀란 듯

토끼 눈을 뜬다.

우리에게 직접 묻지는 못하고, 아들을 불러낸다.


"그래서 넌 누가 잘못한 거 같아?"


한다.

아, 뭐야...... 너희가 지금 우리 재판하냐?

한국어를 정확히 알아듣지도 못하는 주제에

격앙된 부부싸움의 전모를 듬성듬성 설명하는 아들.

그의 증언에서

신용 카드의 연체니, 통장 잔액이 부족했다느니

하는 키워드를 듣고 딸이 한 마디 던진다.


"아아~ 간밧테(頑張って, 노력해서) 국립대학을 가야 하나"


수험 과목이 많아서 공부량과 성실함이 요구되는

국립대는 아예 처음부터 포기하고

사립대학을 가겠다는 꼼수를 두고 있는 딸의 말에

내 귀가 번쩍 뜨인다.

남편의 뒤통수도 움찔한다.


이게 웬 떡이냐!

진짜지? 낙장불입이다!!!


이거 가끔씩 자녀의 참 교육을 위해

한 번 붙어 볼 만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