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月見バーガー
비 오는 일요일이다.
지난주부터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 싼다고 설쳤더니 잠이 부족했다보다.
게다가 아이들 등교에 대한 긴장이 풀어졌는지 일어나니 9시다.
잠결에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었는데 남편은 이 빗속에 뛰러 나가고 없다.
(무병장수를 기원합니다)
아이들도 전날 밤에 압수(!)해 거실에서 충전하고 있던 폰을 각각 들고 들어가
재미난 동영상이라도 보는 건지 엄마가 깰세라 조용하다.
내가 일어나서 거실에 나오니 아이들이 그제야 배고프다고 아우성이다.
그럼 빨리 깨우던지......!(효녀 효자가 따로 없네)
일요일은 정크푸드의 날이다.(누가 들으면 국경일인 줄)
비가 오니 나가기 귀찮다.
딸의 아이디어로 주문을 해서 받아오기로 한다.
배달도 있지만 집에서 맥도날드까지 걸어서 3분도 되지 않는다.
그럼 나갔다 오면 되겠네.
나는 나가서 비 맞기 싫다.
아들아, 누나가 폰으로 주문을 해 놓을 테니 너는 가서 찾아오너라.
아들은 어차피 나가야 하는 신세.
그래도 먹겠다고 신나게 내 폰의 주문 번호를 확인해 가며 빗속을 뚫고 나간다.
군소리도 없이 불평도 없이 묵묵히 나간다.
(정크푸드 좋아하는 든든한 온달이)
아들이 들고 온 비에 젖은 맥도날드 보따리가 제법 크다.
접시에 세팅하려고 보니
엥? 음료수가 세 개, 버거도 세 개, 파이도 세 개다.
딸이 먹을 츠키미버거(月見バーガー*) 세트가 똑같은 게 하나 더 왔다.
순간, 딸이 주문을 잘못했다는 걸 알았지만 섣불리 발언했다가는 어떤 공격을 당할지 모른다.
신중하고 냉정하게 그리고 주관적이지 않은 단어를 골라 확인해야 한다.
딸이 보더니 자기는 절대로 주문을 잘못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부정하고 싶겠지)
그렇다면 우린 두 개 값으로 세 개를 먹게 되니 행운인가?
아니면
이걸 다시 반납하러 이 빗속을 다시 가야 하나?
간다면 누가 가야 하나? 가위 바위 보....?(아 귀찮아)
그 사이 온갖 변수를 계산하고 있는데
딸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서일까
아들이 들고 있던 내 폰을 낚아채더니 증거 수집에 착수한다.
미간에 주름을 잡고 굳어 있던 딸의 표정이
한순간에 미소와 함께 얼음 녹듯 탁 풀어지며
"에헤헤~두 개 주문했네!" 한다.
아아, 잘됐다, 잘됐다. 정말 다행이다.
만약 딸이 주문을 맞게 했는데 버거가 세 개 왔다면
"거 봐! 난 정확하게 주문했다구! 난 잘못한 게 없다구!"
하면서 거만하게 흥흥! 거리며 거들먹거리는 꼬라지를 봐야 하고,
게다가 이 빗속을 여분의 버거를 들고 다시 누군가가 가야 하며.
(딸은 절대 안 갈 것이고 아들은 이미 갔다 왔으니 결국 나잖아)
내가 가져간 버거와 파이와 음료수로 인해
주문을 잘못 파악한 맥도날드 점원의 누군가가 점장에게 혼이 나야 하며
그 식어서 맛이 없어진 음식들을 누군가가 억지로 먹거나 버려야 한다.
혹은,
이 과정이 다 귀찮아서 눈 딱 감고 주문도 안 한 버거를 공짜로 먹게 된다면
이는 아이들의 교육상 절대 득이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으므로
결국 나는 빗속을 터덜터덜 버거를 돌려주러 가야 했을 것이다.
딸의 다소 의기소침한 얼굴을 보면서 나는 짐짓 어진 어미가 되어 본다.
"그럴 수도 있지 뭐"
"덕분에 엄마도 오랜만에 버거 먹고, 이 츠키미버거는 지금 아니면 못 먹잖아"
"실수해도 오히려 그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연습도 중요한 것 같아"
딸이 작아져 있을 때 이런 가식적이고 오글거리는 대사를 한 번 해보지 언제 해 보겠는가.
잘못 주문한 버거 덕분에 이 어미가 작고 소박한 기쁨도 맛볼 수 있으니
비록 미미한 지출은 있었을지언정
버거도 먹고 잘난 척도 하고 뿌듯함도 얻을 수 있는 일석삼조의 효과에
이 못난 어미, 오늘 비 오는 일요일 오전이 참으로 신나도다.
*月見バーガー:츠키미(月見)’는 ‘달맞이’라는 뜻으로, 둥근 달걀을 보름달에 비유한 일본 맥도날드의 가을철 한정 버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