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물어다 준 딸
"엄마, 엄마!"
딸이 또 제비처럼 SNS에서 정보를 물어 와 나에게 입을 벌려 받아먹으라고 성화다.
롯폰기의 모리미술관에서 개최되고 있는 론 뮤익 전시회에 가자고 한다.
내가 가끔 미술관에 같이 가자고 해도 시큰둥하던 딸이 웬일로 눈을 반짝이며 꼭 가고 싶단다.
또 누구 연예인 인스타라도 봤느냐?
딸이 어떤 작가에게 필이 꽂혔는지 궁금했지만 일부러 사전 지식 없이 따라나섰다.
덜컹덜컹 전철 안에서 친구랑 가지 왜 엄마냐고 물으니, 혹시 그 친구가 가기 싫어도 거절을 못해서 억지로 가게 되면 불쌍하니까 엄마를 선택했다고 한다.
아, 뭐야~ 이 쫄보.
나도 네 부탁 거절 못해서 억지로 가는 거거든!(엥? 나도 쫄보?)
난 안 불쌍하냐? 엄마도 좀 동정하라!
지난번 팝업 스토어는 지갑 역할이었는데, 이번에는 무슨 역할이려나......
난 몰랐던 작가였다.
호주 멜버른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하는 작가로 한국에서도 2025년 4월부터 7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를 했다고 한다.
작품을 보면서 딸이 오고 싶어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일단 회화가 아니었고 무엇보다 참신했다.
조형물이었는데 그것도 하이퍼리얼리즘 조각이라고 분류된 작품들이었다.
크기도 다양하고 테마도 열려 있어서, 그 여백이 감상하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유니크한 작품들이었다.
온라인카지노스토리에도 이미 많은 분들이 글을 발행하셨으니, 그의 작품 세계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꼭 찾아 읽어 보시길 바란다.
비 오는 평일이라서 그런지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다.(예약제로 인원 제한을 하고 있어서였을지도)
작품들 자체도 널찍한 공간에 드문드문 놓여 있어서 편안하고 여유롭게 볼 수 있는 게 무엇보다 좋았다.
게다가 작품 전시의 마지막 부스에는 론 뮤익이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고티에 드블롱드 감독의 ≪스틸라이프≫)도 상영되고 있었다.
작품도 좋았지만 난 지금도 그 영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영상 속의 론 뮤익을 보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예술가'라는 선입견은 와장창 깨졌다.
나는 장르가 무엇이든 이른바 '예술가'란 일반 대중과는 다른, 세속과 동떨어진 현학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우리와 같은 '생활인'에 가까웠다.
우리가 매일 출근을 하듯이, 매일 작업실에 가방을 메고 걸어와서 하루를 시작한다.
번뜩이는 인스피레이션과 주체할 수 없어 폭발할 듯한 창작의 열정을 작품에 쏟아붓는 느낌이 아니라, 하나하나를 수작업하듯이 작품을 꼼꼼하게 정성껏 매만지는 그의 자세가 신선했다.
신중하게 눈동자를 만드는 작업을 하다가 망치자 조용하게 욕설을 퍼붓기도 하고, 밥때가 되면 자신과 동료들의 식사를 만들어 같이 먹고 차를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고, 동네 까마귀에게 밥을 주면서 까마귀가 먹는 걸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는 옆집 아저씨와 같은 그에게 '인간'을 느꼈다.
난 이제까지 이른바 거장(巨匠)이란, 눈부신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넓고 깔끔하고 화려한 공간에서 '예술'을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주목을 받으며, 행동 하나하나가 뭔가 특별하고, 아우라가 있어야 거장답다고 생각했다.
'예술가'는 평범하지 않고 굴곡이 많은 삶을 살기에 범상치 않은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갈 수 있다고, 아니 자기만의 세계를 갖기 위해서는 내가 상상도 못 할 운명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다.
내가 편견과 좁은 시야를 갖고 있는 건 예전부터 잘 알고 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 한번 그 껍질을 깰 수 있어서 기뻤다.
딸이 물어다 준 정보 덕분에 난 새로운 희망으로 배가 부르다.
평범하고 조용한 일상을 살면서도 매일 작업실로 걸어가 자신의 것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나도 매일매일 쓰고 싶은 생각과 표현을 조용하고 단정하게 다듬어 가고 싶다.
그렇게 한 편 한 편 쌓아가는 일이 나에게는 나만의 '예술'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예술'이라고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