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까, 말까?
내일이다,
남편 친구들이 도쿄에 온다고 한 날이.
고등학교 동창들인데
한 명은 결혼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고,
미국에 사는 다른 한 명은 아직 만난 적이 없다.
남편은 일본에 온 지 삼십 년이 넘어가고 있다.
게다가 대인관계가 원만한 편도 아니라서,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가 이제 손에 꼽을 정도이다(나도 그렇지만).
손에 꼽는 친구 중,
미국에 사는 친구가 한국에 볼일이 있어서 오는 길에,
남편을 만나기 위해서 일부러 도쿄까지 들른다고 한다.
호텔을 어디로 잡을까,
사흘 동안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낼까,
궁리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났다.
수학여행 가는 것처럼 들떠있다.
남편은 자기가 들떠 있는 것도 모르는 것 같다.
말로는 대충 이야기나 하면서 시간 보내지 뭐...... 하면서도,
도쿄 시내 맛집,
박물관과 미술관의 스케줄을 검색해 놓고,
하루 정도는 차로 후지산에 갔다가
도중에 야마나시현의 맛있는 호토(야마나시현의 향토요리)를
먹으면 어떻겠냐고 묻는다.
나한테 묻기는 하는데
마음은 이미 후지산에서 내려와
호토를 주문하고 있는 것 같다.
스케줄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들이 오는 날,
나도 가서 인사를 해야 하나......
하는 문제에 봉착했다.
남편이 말하길,
자기는 친구가 대접한다고 아내도 같이 나와서
이야기도 하고 식사도 하는 게 조금 불편했다고 한다.
그러니 내가 가면 친구들이 불편해 할 수도 있으니
굳이 같이 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나도 처음에는 그럴까?
하고 남편 말대로 하려고 했다.
난 나잇값도 못해 낯가림을 좀 하는 편이라서,
예전 같으면 혼자 잘 다녀오시라고
신나게 손 흔들며 배웅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남편 말을 그대로 들었다가 욕을 한 바가지로 먹은 기억이......
시부모님이 일본에 오실 때의 일이다.
남편은 몇 번 와보셨으니 굳이 공항까지 마중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난 아무 의심도 없이 남편 말만 믿고
‘그래도 되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시부모님은 무사히 잘 도착하셨지만,
나중에 양가의 형제들에게
"너희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라고 엄청나게 혼난 적이 있다.
나중에 엄마한테만
"남편이 그래도 된다고 했어"라고 변명을 하니,
그걸 말이라고 하냐며 네가 더 바보라면서
남편이 시키는 대로만 하지 말고
생각을 좀 하고 살라며 더 혼이 났다. 우뛰......
난 어릴 때부터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래서 어릴 땐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만 했다.
왜 그래야 하는지도 따지지 않고,
의문도 갖지 않은 채,
그게 좋다 하고 맞다 하니까 그저 따랐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 보니
나는 스스로 판단하는 데 자신이 없어졌다.
그러면서도
유학이나 결혼 같은 큰 일은
누구와 상의도 하지 않고 덜컥 멋대로 결정해 버리니
부모님도 많이 황당하셨을 것 같다.
나도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내 딸이 나랑 똑같은 행동을 해도 난 할 말이 없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인생 경험이 많은 남편이 나보다
훨씬 생각이 깊고 현명한 판단을 할 거라 믿고 남편의 말을 따랐다.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아이들을 키우면서부터인 것 같다.
남편은 내가 출산과 육아를 거치면서
조금 무서워졌다고 한다.
내가 무서워진 게 아니라,
단지 난 당신의 철없음을 깨달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육아(育児)를 육아(育我)라고도 하던가.
나는 내가 한 판단이 맞는지 늘 불안했다.
감정 표현에 대해서도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것 아닌가,
내가 유별난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하지만 아이들에 대해서는
엄마로서 바카라임 있는 판단을 해야 하니 우물쭈물할 겨를이 없었다.
크게는,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가부터,
작게는, 오락실 갈 때 500엔을 줄지, 300엔을 줄지까지
엄마인 내가 스스로 판단하고 바카라임져야 했다.
이런 모든 일들이 날 성장시키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이젠 남편이 어쩔 땐 철부지 어린아이 같이 보일 때가 있다.
끌끌끌......(도토리 키재기?)
예전에는 나이를 먹으면 저절로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살아 보니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나나 남편처럼.
나는 내일 곱게 차려입고
남편 친구들께 단정히 인사를 드리러 나갈 예정이다.
남편의 판단도 일리가 있지만,
나는
이 더운 여름 일부러 남편을 만나기 위해
이 먼 거리를 한걸음에 달려와 준 친구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남편의 가오를 세우는 일
(顔を立てる[kaowotateru] 체면을 살리다)이기도 할 것이다.
진심을 담아 인사를 드린 다음,
나는 세 분이
편안한 식사와 즐거운 대화를 나누시도록
조용히 빠져나오려 한다.
하지만 어쩌지?
누군가가 더 계시라고 붙잡으면?
못 이기는 척하고 살짝 앉아서
술이나 홀짝거려 볼까 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