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이 내가 되어가는 순간
성적 처리하느라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출석부를 정리하면서 학생들의 이름을 눈으로 쭉 훑는다.
학기가 시작되면 부를 이름들을 보면서 얼굴을 떠올려 본다.
역시 이름이 특이한 학생은 얼굴이 금세 떠오른다.
500명에 가까운 학생들을 다 외우기 위해서 내가 쓰는 방법은, 이름을 탁 보고 성(姓)과 이름 중 머릿속에 남는 쪽을 입력시키는 것이다.
일본인 이름은 글자수 자체가 한국인에 비해 많아서 기억하기가 꽤 벅차다.
일본인의 성(姓)은 한국보다 무척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흔한 성은 사토(佐藤), 스즈키(鈴木), 다카하시(高橋)가 톱3이다.
이런 성을 가진 학생들은 대개 반에서 두 명 이상 있기 때문에 성대신 이름을 부른다.
이름도 의외로 유행 같은 게 있어서 같은 이름이 몇 명이나 있다.
그래서 학기 초에는 이 학생의 이름을 어떤 쪽으로 불러 주면 좋을까......
내 나름대로 궁리하는 것도 재미난 작업 중 하나이다.
이럴 때 고마운 것이 아주 개성 있는 독특한 이름이다.
한 번 들어도 잊히지 않아서 얼굴과 매칭시키면 입력 완전 성공이다.
내가 아직도 기억하는 학생 중에 '쉬리'라는 이름의 남학생이 있다.
부모님이 한국 영화 "쉬리"를 보고 너무나 감동을 받아 자신의 이름을 '쉬리'로 정했다며 조금은 부끄럽게 조금은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던 그 학생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가끔 영화 "쉬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동시에 그 학생의 얼굴이 떠오른다.
난 내 이름이 무난해서 이름에 대해 불만을 갖거나 '이름'이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다만 언니와 오빠의 이름은 아빠가 직접 지었는데, 내 이름은 작명소에서 지었다고 엄마에게 들었다.
그것도 엄마가 내 이름의 유래를 나에게 일러주기 위해 한 말이 아니라, 용한 점쟁이 아저씨에게 내 이름을 지으러 갔더니 당장 가서 이 아이의 남동생을 낳지 않으면 그 집 귀신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부리나케 남동생을 낳았다는 말을 하면서, "아이고, 내가 무슨 이 집 귀신이 되겠다고 부리나케 또 아래를 낳았을꼬....." 하는 신세타령의 도입부로 들은 이야기이다.
그 아저씨 말대로 엄마는 남동생을 낳으셨고 이 집 귀신이 되실 예정이다.
내 이름에 대한 부모님의 각별한 애착을 못 느낀 만큼(지금은 잘 안다), 나도 내 이름에 특별한 애정이 없었다.
그저 이름은 부모님이, 아니 점쟁이 아저씨가 정해 주신, 내 의지로 바꿀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런 내가 이름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는 남편 때문이었다.
나는 남편의 이름이 언니의 어릴 적 친구의 이름과 같아서 전혀 위화감이 없었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서는 남편의 이름을 듣는 순간, "푸하하하" 하고 결례가 되는 행동인지 알면서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웃을 때마다 신기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남편은 이미 익숙한 듯이 전혀 동요하지 않았지만, 옆에 있는 내가 무안해질 때가 많았다.
일본에서는 남편의 이름이 웃음거리가 되지 않아 다행이지만,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자신이 지니고 있어야 할 이름이 본인의 의사와는 아무 상관없이 태어나기도 전에 정해진다는 것이.
그리고 내 아이들의 이름은 정말 신중히 잘 지어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난 딸의 이름을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혹은 해외에서도 발음하기 쉽고 표기하기도 간단하고 듣기에도 거부감이 없는 이름으로 정하고 싶었다.
어떤 이름이 좋을까, 학생들 이름을 참고도 하고 바카라을 찾아보면서 '안'이라는 이름으로 정해 놓았다.
태교 일기장에는 '안'을 불러 가며 쓰기도 했고, 불러오는 배를 쓰다듬으며 대화도 나누곤 했다.
그런데, 아기가 태어나고 며칠 후 한국에서 시어머니로부터 이름 후보 10개가 전달되었다.
시부모님이 아이의 사주로 이름을 받아 오신 것이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 하시니 거역할 근거가 없었다.
혹시 내가 좋아서 정한 이름이 우리 아이 운명의 걸림돌이 된다면 그건 너무 무서운 것 아닌가.
솔직히 마음에 드는 이름은 없었다.
그중 예쁜 이름, 여기서는 부르기 쉬운 받침이 없는 이름을 고르니 하나밖에 없었다.
한자도 획수가 엄청 많고 나도 처음 보는 한자였다.
지금도 가끔 딸에게 확인한다.
"네 이름 마음에 들어?"
딸은 고개를 끄덕이며 어릴 때는 한자 쓰기가 어려웠지만 지금은 특이하기도 해서 괜찮다고 한다.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들이 태어나고 전달된 이름은 딸보다 5개 많은 15개였다.
아들의 이름은 아예 처음부터 생각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리스트가 하사될 터이니.
빈말이라도 시부모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지 못할 정도로 당혹스러운 이름들이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이름은 '훈식'이었는데, 한국에서는 남자다운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훈'은 'フン(糞, 응가)'을 연상시켜 짓궂은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놀림을 당하진 않을까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라는 이름도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예쁜 이름이라 망설였으나 일본어 'ウリ([uri]瓜)'는 오이나 박을 의미해서 역시 포기했다.
그중에서 고른 아들의 이름은 받침이 있고 한자도 일본에서는 쓰지 않는 한국 한자라서 지금도 불편할 때가 참 많다. 그래도 아들은 자기 이름을 불평 없이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다.
아이들은 앞으로 더 커서 자신들의 이름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하게 될까.
이름에는 신비로운 힘이 있는 것 같다.
그 사람과 그 이름은 별개인데도, 그것이 불리는 순간 하나가 되어 버리니까 말이다.
어떤 이유로든 오랜 시간 함께하며 어느새 오롯이 '나' 자신이 되어주는 이름.
출석부를 펼쳐 놓고 학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가만히 입 속으로 불러 본다.
그 소중한 얼굴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
학기가 시작되면 한 명 한 명 빠짐없이 기억해 놓은 이름을 정성껏 불러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