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EYELINE

삐뚤어진 라인의 이로케

by혜준

집에서 5분도 걸리지 않는 학원에 가면서 딸은 아직도 세면대 앞에서 떠나질 못하고 있다.

간다고 선언한 시간에서 30분이나 훌쩍 지나있다.


"빨리 안 가니!!!"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아 삼킨다.

인고의 시간이다.

내 침묵의 의미를 귀신같이 알아채는 딸은 서두르는 척을 하면서도 물통은? 이어폰은? 하면서 또 날 심부름 시킨다. 부글부글......

30분 이상을 세면대에서 보낸 것치곤 얼굴에 변화가 없어서 물어보니, 얼굴을 내 쪽으로 획 돌려 눈을 반쯤 게슴츠레하게 뜨면서 "아이라인! 엄마 때문에 망쳤어"한다.

이런...... 눈 주위를 까맣게 두르고는 눈꼬리를 살짝 올려서 클레오파트라가 따로 없네.

학원에서 뮤지컬이라도 하시려나.

이렇게 조금 꾸미고 가야 공부할 モチベ([mochibe] motivation, 의욕)가 올라간다나......

가지가지한다.


망쳤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아이라인을 고치지 않고 가방을 둘러맨 채 씩씩하게 나서는 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그 아이라인이 참 예쁘다고 느꼈다.

내가 예쁘다, 멋있다고 느끼는 美의 기준은 예전부터 별로 변한 것 같지 않은 것 같다.

다만 나이가 들면서 막연했던 기준이 조금은 선명해졌다고 할까.


나는 외모만으로 쉽게 예쁘다는 말을 건네지 않는다.

그래서 딸이 연예인이나 자기 학교에서 예쁘다고 평판이 자자한 친구의 사진을 보여 주면서 "예쁘지?"

라고 하면 정말 솔직한 말로 "아니, 네가 더 예뻐"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그러면 딸은 "쳇! 오야바카난다카라~(고슴도치 엄마라니까)"하면서도 입은 좋아서 실룩실룩거리며 쑥스러워서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사진만으로는 예쁘다는 말이 잘 안 나온다.

난 얼굴이나 몸매뿐만이 아니라, 움직임이나 태도, 자세, 목소리, 말할 때의 눈빛, 말하는 내용까지 다 보고 나서야 그 사람에게 "美"를 느낀다.

내면까지 포함된 아름다움이 아니면 쉽게 예쁘다고, 멋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또 내면만이 아름답다고 해서 내가 끌리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 내면이 아무리 곱고 선하고 지적(知的)이고 인류애가 넘친다고 해도, 그것이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꾸며낸 것처럼 느껴진다면 나는 절대로 '美'의 범주에 넣지 않는다.

오히려 욕심스럽고 천박하고 품위가 없다고 생각되어도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본인에게 솔직하다면 난 오히려 그 꾸밈없음이 아름답다.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계산되지 않은 아름다움을 동경한다.


즉, 나는 남녀를 불문하고 그 사람이 얼마나 자기답게 살아가고 있는가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일본어의 '色気(いろけ [iroke])'라는 말이 떠오른다.

한자를 우리나라 음독으로 읽으면 '색기'가 되는데, 이것은 다른 결의 의미가 되어 버린다.

우리나라에서는 '색기'라는 말이 주로 여성의 성적매력과 연관되지만, 일본어의 '이로케'는 보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이로케'를 굳이 우리말로 옮긴다면 '매력'이라고 해야 적당할까?

하지만 또 매력이라고만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음...... 아우라(オーラ [ora])라고 할까.

내가 느끼는 '이로케'에는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싶은지가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은근히 배어 있다.

그걸 가지고 있는 사람을 예쁘다, 멋있다, 아름답다고 속삭이고 싶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ギャップ(gap)에도 엄청난 '이로케'를 느낀다.

마냥 착한 사람, 마냥 예쁜 사람, 마냥 멋있는 사람, 마냥 성실한 사람, 마냥 터프한 사람, 마냥 자상한 사람도 그 자체로는 대단하다고 인정할 수는 있으나 끌리지는 않는다.

나는 이른바 범생이 같은데 좀 삐딱한 사람, 혹은 삐딱한 것 같은데 범생이 같은 부분도 있는 사람, 엄청 쿨해 보였는데 어린아이 같은 부분을 보인다거나, 허당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자신만의 세계를 확실히 갖고 있는 사람에게 끌린다.

반대로 무엇보다 난 완벽해 보이려는 사람에게는 '이로케'를 느끼지 않는다.

'이로케'는 약간의 균열과 모자람, 그리고 그것을 굳이 감추려고 하지 않는 순간에 반짝이는 것만 같다.


그럼, 과연 너는 '이로케'가 있는 사람이냐?라고 물으신다면 부끄럽게도 할 말이 없다.

이제까지 난 스스로 부족하고 모자라다고 느끼는 부분은 가능하면 감추고 싶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로케'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요즘엔 부모의 욕심이라는 건 잘 알지만

우리 아이들이 이런 ‘이로케’나 아우라가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은근히 바라기도 한다.

메이크업이나 다이어트, 여론과 타협하여 다른 사람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기보다는, 자기의 생각과 취향과 감각을 가지고 자신(自信) 있게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당당한 자기 자신(自身)을 가꾸어 갔으면 좋겠다.


그러니 딸아,

네가 망쳤다고 투덜대던 그 EYELINE이 어쩌면 너만의 LINE일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남들이 그어 놓은 LINE을 따라 걷는 너보다

조금 삐뚤어져도 너만의 LINE을 그어 가는 네가 훨씬 예쁘다.

그리고,

엄마는 그런 너의 LINE에서 너만의 '이로케'를 본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