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이 왔다

숨바꼭질 4 - 모모 씨의 정체

by혜준

모모 씨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매미 소리를 느꼈다.

사흘 전만 해도 전혀 들리지 않아

아직 땅속에 있나......궁금했었는데

어제는 온몸이 찌르르 울릴 정도로

매미들의 합창이 유난스러웠다.

마치 진공상태와 같은 꿈에서 눈을 떴을 때 들리는

현실의 생활소음처럼.


모모 씨는 서울로 돌아갔고, 나도 현실로 돌아왔다.

일탈은 끝났다.

모모 씨는 친정 언니이다.

지금은 그냥 언니가 아니라 친정 언니라고 하고 싶다.

친정(親庭)은 결혼한 여자가 본래 살던,

그 가족들이 사는 집을 말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 친정은 나를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게다가 누구의 딸도 아닌,

살아온 만큼의 '혜준'으로 있을 수 있는

심적(心的) 공간이라는 걸 알았다.


어린 시절 추억을 공유한 출가외인의 두 여자가

오롯이 둘만을 바라보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아무런 꾸밈없이 할 수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난 그곳을 친정이라 부르고 싶어졌다.


언니가 출국게이트 저 멀리서

긴 팔을 흔들고 사라질 때까지

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언니가 서울에서 늘 그랬듯이.

언니와 보낸 사흘을 생각하며

'夢のような([yumenoyouna] 꿈만 같은)'이라는

상투적 표현의 위대함을 새삼 깨달았다.


처음이었다.

언니가 아이들도 없이, 엄마도 모시지 않고,

혼자 이렇게 달랑 나만을 보기 위해 도쿄에 온 것은.

우리 집도 아니고 온천 관광지도 아닌,

우리 두 사람이 언제든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확보된

도쿄의 모처(某處)에서 널브러질 수 있었던 것은.


하지만

생각해 보니 사흘을 밤낮없이 붙어 있었어도

우리가 그렇게 많은 말을 주고받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야기하다 지치면 서로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언니는 프로급 뜨개질의 명수답게

새털처럼 가볍고 예쁜 돋보기를 코에 걸치고

묵묵히 코바늘과 실을 바삐 움직였으며

나는 아마추어 작가(?)답게

노트북을 펼치고 투박한 돋보기로

조용히 화면을 응시하다가 천천히 키보드를

두드리곤 했다.

그러다 지치면 밥도 먹으러 가고 목욕도 하러 가고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서 구마모토의 재해민들에게

미안해 잠시 우울하기도 했다.


마침 언니의 생일이 끼여 있었다.

언니가 온 날부터 시원해진 도쿄의 날씨를

마치 내가 선물이라도 한 것처럼 생색도 내 가면서

의기양양하게 우리는 긴자를 돌아다녔다.


언니와 나는 세 살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대학 졸업 후 바로 결혼을 하고

바로 연년생으로 아이를 낳아 키운 덕분에

지금 조카들은 서른도 훌쩍 넘어 자립한 지 오래다.

인생의 관문을 세 살 아래인 나보다

한 십삼 년 이상은 빨리 거친 탓에

난 늘 언니에게는 어린 동생이었나 보다.


늘 받기만 했다.

서울에 가면 엄마와 함께 이것저것 챙겨 주고

내가 해야 할 도리도 언니가 대신 도맡아 주고,

도쿄에 오면 혼자 애쓴다고

또 이것저것 마음을 써 주었다.

그리고, 돌아가고 나면 엄마와 언니가 사서

들여놓은 물건들이

내 결핍과 외로움을 달래주었다.


그땐 몰랐다.

주니까 그저 받았고, 고맙긴 했지만

그 안에 담긴 진짜 애틋함을 헤아리지 못했다.

내가 아이들을 낳고 키우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제 아이들 키우기도 버거웠을 그 시절,

언니가 어떻게 동생에게까지

그토록 마음을 쓸 수 있었을까.

뒤늦게 깨달은 애틋함과 애정이 몇 배로 불어나

지금 나는 감정의 바다에 표류하고 있다.


뭐라도 해 주고 싶었다.

생일이라서가 아니라

언니가 호기심에 가볍게 들어 올린 물건 하나하나를

모두 장바구니에 담아 호기롭게 지갑을 열고 싶었다.

언니는 다 필요 없다고 했다.

서울에 가면 더 많다고 했다. 그건 나도 안다.

더 싸고 더 편리하고 이젠 품질도 더 좋은 물건이

한국에 많은 건 나도 안다.

하지만 뭔가 품에 안겨 주고 싶었다.

내가 여기서 그것들을 보며

언니와 엄마의 빈자리를 채웠던 것처럼

언니도 그래주었으면 했다.


우리는 한 장의 생일 카드를 고르고,

똑같은 디자인과 색깔의 치노팬츠를 골랐다.

역사가 오래된 맛집에 가서

우리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있었을 메뉴들을 골라

맛있게 먹었다.

엔화 싸다며, 비싸진 원화를 자랑하며

엄청 부자가 된 것처럼 언니는

언제나 그랬듯 지갑을 열었지만,

난 이번만큼은 언니에게

단 1엔도 꺼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 아이들에게 돈 들어갈 데가 많다며

한 푼이라도 아끼라는 언니는,

정작 본인이 아이들을 키우던 그 고단한 시절에도

동생을 위해 늘 지갑을 열지 않았던가.


그 고마운 마음을 다 겪어 봐야 아는 이 못난 동생은

이제야 언니에게 고마움과 애정을 표현하려 한다.

말주변 없어 고운 말로 마음을 표현할 수 없는 나는,

그저 먼저 지갑을 열어 마음을 전하고 싶을 뿐이다.

오랜만에 계산 없이 뭔가를 해 주고 싶다는

아름다운 마음을 갖게 해 준 언니가

또 한 번 고마워진다.


언니를 보내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문득 옆자리에 앉아 있는 딸의 폰을 보니

폰 케이스 바깥으로 접힌 지폐가 보인다.

어느 틈에 언니가 딸아이에게 용돈을 건넨 모양이다.


적은 액수가 아닌 그 용돈에 대해

나에겐 입을 꼭 다물면서도

내가 보기 쉬운 투명 폰 케이스에 집어넣은

딸의 내적 갈등에 깔깔 웃음이 나왔다.

나에게 이런 밝음과 여유를 담뿍 주고 간 언니가

벌써 그립다.

웃다가 눈물을 흘리는 나를 바라보는 딸의 눈가도

어느 틈에 촉촉해져 있다.


나는 딸에게 우리 언니와 같은 친정이 되고 싶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누구의 딸이 아닌

'ㅇㅇ'이라는 존재의 과거, 현재, 미래를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감쌀 수 있는

그런 시간과 공간이 되고 싶다.


그리고 우리 언니에게도

나는 그런 친정이 되고 싶다.

아니, 꼭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