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 밑이 어둡다

내가 몰랐던 내 아들

by혜준

오늘은 아들과 나란히 학교로 향했다.

담임 선생님과 아들, 그리고 엄마인 내가

공포의 삼자면담(三者面談)을 하기 위해서다.


요 나이 때 아들들은

엄마랑 엄청 거리를 두고 걷는다던데

우리 아들은 아직 정신연령이 낮은 탓인지

아니면

내가 고령출산을 한 탓에 젊고 예쁘지 않아

여자 친구로 오해받을 염려가 없어서인지

옆에 나란히 서도 전혀 어색해하지 않고

오히려 지가 내 가까이에 와서 양산을 같이 쓰려고

머리를 들이밀기까지 한다.

좁고 더워 죽겠는데...... 저리 가!


시간에 맞춰 교실에 들어서자

아들은 고개를 거의 교실 바닥에 닿을 듯

푹 숙이고 죄인이 된다.

영문도 모르는 내가

아들의 지팡이처럼 굽어진 옆모습을

곁눈으로 보며 앉자마자

선생님께서는 예쁜(?) 성적표를 정중하게 건네주신다.


며칠 전부터

삼자면담 전에 좀 봐야 선생님과 이야기가 될 것 같아

성적표 좀 내놓라고 몇 번을 이야기해도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도망 다니더니

너 딱 걸렸어.....

난 사실 성적표를 잘 확인하지 않는다.

안 봐도 다 아니까.

시험 공부하는 태도와 눈빛을 보면 다 안다.

직업병이다.

요것들은 성적이 좀 잘 나왔다 싶으면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목에 깁스를 했는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척척 잘도 갖다 바치기 때문에

성적표가 없는 학기는 좀 부진했구나......

하고 예상을 한다.

마침 안경을 안 가져가서

선생님이 주신 성적표의 깨알 같은 석차가 안 보인다.

아들, 너 오늘 운 좋다......(근데 안 봐도 다 안다고!)


선생님의 귀중한 말씀을 메모해 가며 새겨듣고 있자니

(아들은 대역죄인인가 고개를 숙인 채 들지를 못하네)

이 못난 어미에게도 발언권을 주신다.

"뭐 질문하실 것이라도......"

고개가 할미꽃처럼 축 늘어진 아들을 다시 흘낏 보며

마지막 용기를 쥐어짜 한 마디 올린다.

성적이 꼴찌라 열등감에 혹시나 학교에서 주눅이 들까

그게 제일 걱정입니다. 교우 관계나 학교 생활에 혹시

문제는 없을까요? (물론 돌려서 이야기했음)

성적이다 과제 제출이다 정리정돈이다

내 아들의 문제점을 마치 당신 아들의 잘못인 양

부끄러워하시며 곤란한 얼굴로 말씀하시던 선생님이

갑자기 활짝 파안대소(破顔大笑) 하시며

목소리도 크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려서

2학기에 있는 축제와 운동회에서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라고 하신다.

네? 목소리가 크다고요? 집에서는 모기소리인데......

친구들과 잘 어울린다고요? 누나한테 찍소리도 못하는 찌질인데......

그런 아들이 안쓰러워 오락실 갈 때 100엔이라도 더 쥐어 주었건만

완전 사기캐 아닌가!!!!!


요놈, 요고......

어쩌면 이제껏

공부도 뺀질뺀질 게으름 피우면서

마치 능력이 없어서 못하는 척,

늘 불쌍하고 가련한 약자를 연기해

엄마의 모성애를 자극하고

피땀눈물로 번 엄마의 100엔을

곶감 빼먹듯 야금야금 오락실 기계에 투척하며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灯台下暗し([toudaimotokurasi] 등잔 밑이 어둡다)

밖에서는 선생이랍시고 학생들을 다 아는 양 잘난 척을 하더니,

정작 가까이 있는 내 아들은 1도 모르고 있었네.

(여기서 灯台는 내가 이미지 사진으로 떡하니 올려 놓은

그 '등대'가 아니라 '등잔대'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네. 이런......)


면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들의 목은 조금 펴졌지만 여전히 빨대 목처럼 꼬부라져 있다.

이것은 명품 연기인가 진심 어린 반성인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초밥집*에서 내 머릿속도 함께 뱅글뱅글 돌아간다.

묵묵히 밥을 먹고 나서 아들이 하는 말,

"엄마, 나 500엔만......"

가방에는 이미 아침에 집에서 넣어둔 북채가 들어 있었고

면담 후에는 바로 오락실로 갈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너는 그야말로 太鼓의 달인이라기보다는 명품 연기의 달인.


아들, 선생님, 엄마의 공포의 삼자면담은,

아들의 정체가 밝혀진 진실의 삼자면담이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