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허기진 마음을 이제야 알았다
한 사람이 없다고 집이 이렇게 조용할 수가 있나.
딸이 테니스 部活([bukastu] 동아리) 합숙으로 3박 4일 나가노(長野)로 떠난 지 이틀째이다.
딸은 평소에도 폰이나 컴퓨터를 들고 방에 들어가면, 집에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를 정도로 조용하다.
그런데 나는 왜 새삼 이렇게까지 조용하게 느끼고 있나 싶었는데,
아! 그건 물리적 조용함이 아니라 내 마음의 고요함이라는 걸 알았다.
집 안이, 내 마음이 적막강산이다.
슬프거나 쓸쓸한 게 아니라 마냥 미안하다.
미안해진다.
소중한 내 딸에게......
본인은 의식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매년 합숙에 가기 전날 저녁 식사 때 딸이 반드시 묻는 말이 있다.
"나 없으면 쓸쓸할 것 같아?"
"당연하지. ㅇㅇ 없으면 엄청 쓸쓸하지"
하지만 정작 딸은 내 대답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아마도 딸이 원하는 것은, 영혼 없는 내 대답이 아니라, 자기가 없는 동안 엄마가 많이 섭섭하고 쓸쓸하기를 바라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달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딸은 어쩔 땐 나를 확 밀어냈다가 어쩔 땐 나에게 찰싹 달라붙어서 열일곱 살인 지금도 "抱っこ~"([dakko]
안아 줘~)라고 갸루처럼 콧소리를 낸다.
딸의 이런 모든 행동에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쩌면 이런 행동의 원인 중 하나는 나에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아이에 대한 엄마의 애정표현은 다 비슷비슷하겠지,
그런 건 일일이 표현을 안 해도 진심이니까 전해지겠지...... 했었다.
그런데, 어쩌면 난 다른 엄마들과 조금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물론 똑같은 엄마는 단 한 명도 없겠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애정을 담뿍 담아서 표현을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내 애정의 바구니에서 애정을 조금씩 덜어내려고 애썼다.
버릇이 없어질까 봐?
원래 아이를 안 좋아해서?
우리 집 아이들은 그리 예쁜 용모가 아니라서?
다 아니다.
난 내가 아이들을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하게 될까 봐 그게 두려웠다.
아이들이 원하지도 않는 '희생'을 해 놓고, 은연중에 아이들에게
"내가 너희를 어떻게 키웠는데......"
"너희를 키운다고 난 이런 걸 포기했는데......"
하는 생색과 원망을 할까 봐 늘 스스로를 경계했던 것만 같다.
그래서 난 나를 아이들에게 집중시키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아이들을 위해 하는 모든 일들은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라고 최면을 걸었다.
아이들을 위해서 사는 것이 싫은 게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부모의 은혜'라는 미명하에 부담을 줄까 전전긍긍했다.
나는 내가 자식으로서 느끼고 있는 이 무거운 부담감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난 아이를 낳기 전에는 부모님의 커다란 은혜, 늘 우리를 위해 애쓰고 희생하신 부모님께 효도를 하는 게 당연하고, 나도 사랑을 받고 이렇게 큰 것이니 다음 세대에게 내리사랑을 실천해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내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점점 엄마의 사랑에 위화감이 느껴졌다.
방글방글 웃는 아이들의 얼굴과 나날이 성장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가 느끼는 이 무조건적인 벅찬 감정과 애정을 과연 우리 엄마는 나에게 느꼈을까 의심이 들었다.(연년생 사 남매는 무리일 수도)
엄마의 노후를 바라보면서, 나는 자식에 대한 엄마의 종착역이 자식의 자립과 서로의 독립된 삶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엄마에게서 자식들이 언제까지나 당신 곁에 머물며 순종적으로 따르길 바라는, 子離れ([kobanare] 자식과의 분리)를 하고 싶지 않은 아니, 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외로운 어린 엄마를 보았다.
엄마의 마음을 거꾸로 따라가 보았다.
어쩌면 엄마도 자신의 삶을 거의 모두 자식에게 내어준 뒤, 그만큼의 사랑을 우리에게서 돌려받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엄마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외로운 엄마에게 잘해야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나는 내 아이들에게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이 커져만 갔다.
부모의 '희생'을 자식이 무거운 짐으로 여기지 않게 하는 방법으로, 나는 모성(母性)을 계산했던 것 같다.
전부 다 주지 말고 조금 덜 주면, 나중에 내 아이들과의 분리가 조금은 쉬워질지도 모른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걸 지금 깨닫는다.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중에 어떻게 되든, 지금 나의 이 사랑과 마음을 후회 없이, 있는 그대로 아이들에게 표현해야 할 것 같다.
그게 맞는 것 같다.
딸이 빠알갛게 그을린 얼굴로 커다란 테니스 가방을 짊어지고
축 늘어져서 집에 돌아오면,
무엇보다 말없이 꼭 안아 주고 싶다.
그리고
땡볕의 코트에서 5년째 합숙 훈련을 해 온 딸에게, 마음속으로 속삭이고 싶다.
엄마는 이제야 알았다고.
네가 그렇게 엄마를 밀어냈다가 다시 안아 달라고 했던 이유를.
네 마음 속에 늘 허기져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잘 자라.
내 소중한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