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그지의 샤인머스캣
여기 일본 학생들과 한국 드라마 이야기를 하다가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과일'에 관한 것이다.
"왜 한국 술집에서는 안주로 과일을 먹나요?"
"왜 한국에서는 밥을 먹고 나서 과일을 먹는 장면이 많나요?"
확실히 내가 생각해 봐도 한국인의 과일 사랑은 참 특별한 것 같다.
우리 집도 냉장고에는 항상 제철 과일이 들어 있었고, 연년생 4남매라 먹는 양도 엄청나서 귤이나 사과 같은 건 궤짝에서 꺼내 먹었던 기억이 있다.
예전에 이곳의 딸기에 대해서 쓴 글도 있지만, 처음 여기 와서 마트에 파는 과일을 보고 그 양과 가격에 기겁을 했으며, 지금도 과일을 살 때는 괜히 바가지를 쓰는 것 같아 속이 언짢다.
여긴 主食도 副食도 양이 일단 적다.
한국에서는 푸짐하게 차려 내는 것이 정을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라면, 일본에서는 좋은 것을 조금씩 정갈하게 내놓는 것이 정성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재작년 여름, 한국에 갔을 때에도 마트에서 그 푸짐한 제철 과일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넉넉해지고 푸근해졌었다. 그중에서도 일본에서는 너무 비싸서 엄두도 내지 못했던 샤인머스캣이 매대에 풍성하게 진열되어 너무나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여기서 샤인머스캣은 과일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로, 한 송이씩 비닐로 단정히 커버가 씌워져 가격이 아무리 싸도 900엔에서 1000엔이 넘는다.
백화점이나 선물용의 경우는 더더욱 가격이 올라간다.
그 맛있는 샤인머스캣을 나도 질리도록 실컷 먹고 싶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샤인머스캣은 일본에서 오랜 시간 연구해서 만든 품종인데, 어쩌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흔하고 저렴한 과일이 되었을까? 일본에서 개발된 품종이 어떻게 해외에서는 이렇게 널리 재배되게 된 것일까?
그래서 찾아보니, 여기에는 품종의 해외 보호와 재배 방식, 그리고 각 나라의 유통과 품질 관리 방식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것 같았다.
샤인머스캣은 일본에서 개발된 품종이지만, 해외에서 품종보호를 받기 위한 절차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한국에서도 로열티 부담 없이 재배가 가능해졌고, 이후 한국 농가에서 재배 면적이 크게 늘어나면서 지금처럼 흔하게 볼 수 있는 과일이 되었다 한다.
여기에 한국에서는 샤인머스캣이 '돈이 되는 포도'로 알려지면서 많은 농가가 재배에 뛰어들었고, 생산량이 빠르게 늘어난 것도 가격을 낮추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반면, 일본에서는 샤인머스캣을 여전히 고급 과일로 다루는 경향이 강하다. 당도와 알의 크기, 외관 등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선물용 과일로 소비되는 비중도 높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격도 높게 형성되어 있는 것 같다.
결국 같은 포도인데도, 한쪽에서는 비교적 흔하고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과일이 되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특별한 날 선물로 주고받는 귀한 과일이 된 셈이다.
이런 배경을 알고 나니 조금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한국 사람으로서는 맛난 샤인머스캣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신나는 일이겠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일본에서 오랜 시간 품종을 연구하고 개발한 사람들에게는 조금 허무한 일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마치 수업 열심히 듣고 성실하게 정리한 노트를 친구와 공유했는데 친구가 나보다 더 성적을 잘 받았을 때의 황당함과 비슷하려나?
이때 노트 빌려간 친구가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술이나 한 잔 산다면 나는 툭툭 털고 다음 시험에도 기꺼이 노트를 빌려 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친구가 고마움을 모르고 나를 바보 취급하거나 자신의 능력이 우위임을 과시하려 한다면......
친구 리스트에서 아무런 미련 없이 지워 버리리라.
그럼, 일본 농가도 한국 농가처럼 재배 면적을 넓히면 되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질문이 생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샤인머스캣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다른 것 같다. 여기서는 샤인머스캣이 여전히 고급과일로 여겨지고, 선물용으로 소비되는 비중도 높다 보니 생산량을 늘려 가격을 낮추기보다는 높은 품질과 가격을 유지하는 쪽을 선택하는 것 같다.
정말 그런 것 같다. 나도 샤인머스캣을 마트에서 산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가끔 お中元([ochugen] 여름 백중 선물)로 받아서 선물 상자를 열었을 때 그 눈부신 빛을 본 순간, "우와~" 하고 탄성을 지르며 한참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는 그런 과일이 샤인머스캣이다.
한국에 계신 여러분들이 너무 부럽다.
그 눈부시고 아름다운 샤인머스캣을 TV를 보면서 눈길조차 주지 않고 심심풀이 땅콩처럼 덥석 덥석 입 속에 넣어 즐기실 수 있는 그 풍족함, 여유로움......
우리 엄마는 맨날 나보고 '일본 그지(거지)'라고 놀린다.
하지만, '그지'라서 알게 된 소중한 가치도 있다.
흔하면 귀한 줄 모르고, 귀하면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것.
그러니 한국에 있는 여러분들이여......
샤인머스캣을 내 몫까지 실컷 드시기를.
나는 여기서 한 송이의 샤인머스캣을 앞에 놓고 먹지도 못하고
"우와~" 하면서 감탄이나 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