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을 찾아 헤매던 육아
우리 집 바카라장 한편에는
아직도 하정훈 선생님의『삐뽀삐뽀 119 소아과』가
그 두꺼운 존재감을 드러내며 자리 잡고 있다.
2008년에 나온, 손때 묻은 개정판이다.
노산(老産) 동지로 나보다 2년 먼저 출산한 친구가
이렇게나 두꺼워서 우송비도 많이 나올만한 이 바카라을
본인도 한창 육아에 정신없을 때 나를 위해
한국에서 부쳐주었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지금처럼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고
카톡도 없던 그때,
나에게 '아기'라는 미지의 존재에 대해
자상하게 가르쳐 주고 안심시켜 준 이 바카라은,
친구의 우정이 담뿍 담긴 신줏단지와 같았다.
아기 재우고 읽다가 내 베개가 되기도 했지만
난 바카라에 있는 내용들을 하나하나 확인해 가며
안심도 하고 불안해하며 육아를 했다.
첫 아이는 특히 너무나 조심스러워서
이유식 하나 만들 때도 유난을 떨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유난이지만 그땐 정말 진지했다.
조금이라도 어기면 큰일이라도 나는 양 노심초사했으니까.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의 '이론 육아'는.
아이가 커 가면서 첫 번째 신줏단지가 그 역할을 마치자,
나는 의지할 또 다른 정답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란 게
순전히 그 바카라들 덕분이라는 착각과 확신 사이에서,
나 혼자서는 너무나 불안했기 때문에.
그 불안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신체적인 면보다는 정신적 성장에 대한
현재 엄마로서의 나의 태도가
과연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에 대해
여러 국면에서 생각하게 된다.
난 이제까지 내 선택에 대해서 그다지 고민하지 않았다.
몇 번이고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라고 나 자신에게 물어서,
자연스럽게 "응!"이라는 대답에 도달하면
난 그 판단에 따라 별 의심 없이 행동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껏 후회 없이,
아니 스스로의 선택이었으므로 후회가 되더라도 납득했고
그래서 불만도 없다.
하지만, 육아는 그게 안된다.
나 자신의 선택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고, 후회 안 할 자신이 없다.
도대체 나는 왜
육아에 있어서는 나 자신의 판단과 선택을 믿을 수가 없는 걸까.
아기 때부터 육아서에 의존해 키운 탓일까.
아니면, 나 자신의 판단과 선택이
내 선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어서일까.
나의 작은 말과 행동이
어쩌면 걷잡을 수 없이 아이들의 삶에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는 강박 같은 것이 있다.
육아에 있어서는 시행착오를 해서는 안된다,
후회할 일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건 내 인생이 아니라
아이들의 인생이니까...... 하는 강박.
그래서 한 때는
부모인 네 영향은 그리 크지 않아,
아이들의 성격은 이미 3,4살에 정해져 버려,
인간은 타고난 운명이 있어.....
라는 다른 종류의 육아서로 잠시나마 불안에서 도망치기도 했다.
하지만,
난 어느 틈에 또 내가 엄마로서
이대로 괜찮은가를 계속 자기점검하고 있다.
내가 이 말을 하면, 내가 이렇게 행동을 하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저렇게 되면 어쩌지?
그래서 난 아이들과 같이 있는 시간이 그리 편하지 않다.
아이들이 부담스럽고 싫고 불편한 건 절대 아니다.
아이들이 내 목숨보다 소중하고 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있는 그대로의 아이들을 편안하고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가 없다.
아이들에게 따뜻하고 푸근하게 대해 주지 못하는 엄마인
내가 너무 답답하고 싫다.
엄마로서의 이런 나 자신이 밉고 싫으니
육아에 있어서만큼은
스스로를 믿고 선택과 판단을 할 수가 없는 것 같다.
이런, 이런...... 또 이렇게 되어 버렸다.
이 글도 처음에 시작할 땐
이젠 나도
스스로 맞다고 판단한 말과 행동에 믿음을 가지고
실수를 하더라도 실패라고 생각하지 말고
아이들을 키우자라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쓰다 보니 또 이렇게 무겁고 칙칙하고 어두워진다.
오늘 밤엔 오래간만에
육아서로 가득 찬 이쪽 편 바카라장이 아닌
조금 떨어진 저쪽 편 바카라장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DVD를 꺼내 같이 보면서
나 자신과 아이들을 위한
덥지만 따뜻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런데......
같이 봐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