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톡!!!

잊고 있던 우리를 불러내다

by혜준

까톡!!!

오래간만에 카톡이 울린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열어 보니 역시나 우리 4남매의 단톡방이다.

카톡에는 가족이나 이젠 몇 안 되는 한국 지인분들 연락처뿐이라 쓰는 일이 거의 없다.

연락이 온다면 혼자 지내는 엄마가 갑자기 다쳤다거나 입원을 했다거나 혹은 정기적으로 다니는 병원에서의 당뇨 수치에 대한 경고를 모두가 공유하기 위해 병원에 따라간 형제 중 누군가가 보내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카톡이 오면 겁부터 난다.

기쁜 소식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조마조마한 가슴으로 열어 보니,

역시나 엄마의 당뇨로 인한 시력 상태가 심각해져서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동생의 연락이다.

나를 뺀 세 명이 서로 협력해서 엄마를 모시고 거의 반나절, 하루 종일 걸리는 병원을 다니고 한 보따리나 되는 약을 받아서 그걸 엄마가 먹기 쉽게 다 나눠서 정리해서 넣어 놓는 일까지 한다.

난 카톡에 아무런 답장도 쓸 수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미안하다는 말 외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나에게 아무도 불만이나 눈치 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미안해져서 몸이 쪼그라드는 느낌이 든다.

고마움과 함께 미안함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

말로라도 표현을 하는 게 맞다는 것은 알지만, 그 마음이 너무나 무겁고 큰 경우에는 말로 표현한 순간,

그 마음이 너무나 가볍고 작고 얄팍해져 버리는 것만 같아 오히려 주저하게 된다.

솔직히 자주 뵙지 못하는 엄마에 대한 죄스러움보다 난 형제들에 대한 미안함이 더 크다.


우린 딸, 아들, 딸, 아들의 4남매이고 연년생이다.

난 셋째로 언니는 나보다 세 살, 오빠는 두 살, 남동생과는 한 살 차이가 난다.

다들 연년생이라고 하면 자주 싸우지 않았냐고 하지만 난 싸운 기억이 거의 없다.

엄마의 가정교육 중에 거짓말과 형제들의 서열에 엄격한 방침이 있어서

감히 언니나 오빠의 이름을 마구 부른다거나 심하게 대든다거나 하는 것은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다.

난 셋째지만, 남동생이 더 오빠 같았고 언니는 엄마보다 더 엄마 같은 존재였으며 오빠도 늘 다정했다.

가끔은 치고받고 싸우고 컸으면 서로 더 끈끈한 형제애가 형성되었을까..... 싶기도 하다.

왜냐하면, 나를 제외한 우리 남매들의 성향은 조금 서운한 게 있어도 터놓고 이야기한다기보다는 뭔가 이유가 있겠지 하고 서로에게 가능하면 싫은 소리는 안 하고 배려하고 눈치껏 행동하는 경향이 있어서 속내를 털어놓기가 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비슷한 우리는 같이 많이 놀았다.

네 명이 항상 나란히 텔레비전 만화를 보고 주제가를 소리 높여 불렀다.

지금도 기억하는 수많은 주제가들......

은하철도 999, 미래소년 코난, 마징가, 그랜다이저, 독수리 오형제, 알프스 소녀 하이디, 빨간 머리 앤, 엄마 찾아 삼만리......

그리고 엄마가 외출하면 넷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안에서 손전등을 켜 놓고 포장마차를 열었다.

여러 과자를 펼쳐 놓고 먹기도 하고, 금지된 불량식품 뽑기(?)를 몰래 사 와서 바늘로 콕콕 찔러 먹었다.

부루마블도 하고, 트럼프로 원카드랑 포커도 하고, 엄마 몰래 화투도 배웠다.

겨울이면 스케이트를 타고, 여름이면 잠자리를 잡고, 시골 친척집에 가면 개울에서 같이 놀았다.

언니가 친구에게서 빌려 온 『캔디 캔디』『 유리가면』『올훼스의 창』등 많은 명작도 같이 읽었다.


이걸 쓰고 있자니 잊고 살았던 작은 기억들이 신기할 정도로 하나 둘 되살아난다.

하나를 떠올리면 또 하나가 따라 나오고, 그 기억 끝에는 또 다른 기억이 기다리고 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지만,

사라지지 않고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과거의 이 시간들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진다.

지나갔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도, 부질없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나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면,

우리 형제는 과연 어떻게 지내게 될까...... 가끔 혼자 청승맞은 생각을 한다.

앞으로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각자의 가정과 일이 있으니 지금처럼 엄마 병원이라는 계기가 사라진다면

더더욱 소원해지는 게 어쩌면 당연할지도.

이제까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고

너무 앞으로 앞으로만 바라보고 달려온 것 같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앞으로가 아니라

뒤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가끔 지금처럼 멈춰 서서 과거를 추억하는 시간도,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까톡!!!

내일은 내가 먼저

과거의 단편들을 가지고 단톡방에 들어가서

미안한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모두와 함께

우리의 어린 시절을 다시 불러내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