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편을 응원하는 이유

내가 친구를 정의하는 방식

by혜준

쉬는 시간에 남학생들 몇 명이 우르르 오더니

"선생님은 한국하고 일본, 어디를 응원해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법 진지하게 물어본다.

"한국이나 일본이 다른 나라와 시합을 하면

당연히 한국과 일본을 응원하지."

했더니 답답하다는 듯이

"아니요! 한국과 일본이 시합을 하면 어디를 응원하냐고요."란다.

요 녀석들 뭘 알고 싶은 거냐!

생각하는 척을 하다가

"음...... 지는 쪽을 응원할 것 같은데?" 했더니

쳇! 뭔가 김 빠진 표정이라고 할까

납득이 가지 않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시 우르르 자기들 자리로 돌아간다.

그들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을지 몰라도

이게 내 솔직한 마음이다.

이 마음을 좀 더 멋진 언어로

표현할 능력이 없는 것이 다소 분할 따름이다.


현실로 닥치면 어찌 될지 모르겠으나,

예전부터 가끔씩 내가 생각하는 망상이랄까

공상이 몇 개 있다.

그중에는 한국에서 전쟁이 나면

난 어찌할 것인가라든지

일본에서 또다시 3.11와 같은 대재해가 일어나면

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내 행동 방침을 결정하는 심각한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내가 독신이었을 때, 아이들이 없었을 때,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한 지금,

행동방침이 조금씩 바뀌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 혼자 잘 살자고 도망치지는 말아야지…

하는 게 내 기본 철칙이다.

"나라를 위해서 이 한 목숨을 바쳐....."

뭐 이런 거창하고 영웅적인 서사가 아니라,

혹시라도

이 두 공간에서 어떠한 불행이 일어난다고 해도

난 떠날 마음이 추호도 없으며

오히려 힘든 상황에 있을 때

끝까지 이들 곁에 있고 싶다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한국과 일본에 대한 내 생각은 뭐랄까......

나에게는 국가로서가 아니라

그냥 친구?를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느낌에 가깝다.

곤란에 처해 있는 친구를 버리는 행동만은

하고 싶지 않다는 느낌?

나는 친구라는 개념에 상당히 엄격해서일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친구라고 꼽을만한 사람이 없다.

헛살았구먼...... 하는 소리를 들어도 할 수 없고,

성질 더럽네...... 하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

나에게 친구란, 나보다 더 소중히 하고 싶은 존재이다.

친구에 대한 내 정의가 이렇게 너무 이상적이라서,

지금 나에겐 친구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과 일본은

나에게 있어서는 국가이기 전에 친구와 같다.


그래서 난 가끔 이 두 친구가

티격태격하는 걸 보고 있으면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고,

누구 편을 들고 싶다는 생각도 그다지 들지 않는다.

너는 식민지기의 그 굴욕과 치욕을 잊을 수가 있느냐,

독도와 다케시마 중 넌 어느 쪽이냐,

세금만 죽어라 내고도 선거권도 주지 않는

그걸 친구라고 붙어 있느냐,

뻑하면 헤이트 스피치로

가에레!!!(帰れ,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하는

그 친구가 친구냐,

넌 이 두 친구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이냐......

등등의 말들은 가끔은 아프기도 하지만

이 두 친구를 아끼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내 소중한 두 친구가 서로 다툴 수도 있고,

화해할 수도 있고,

또 서로에게 섭섭하게 할 수도 있으며,

서로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봐야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난 내 목숨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을,

이 둘을 버릴 수도 없으며 버리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둘 중에 누구를 선택하라고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 당시 형편이 어려운 친구,

내 도움이 필요할 친구에게 손을 내밀 것만 같다.

상대가 나를 친구로 생각해 줄지 어떨지는

내가 선택할 문제가 아니다.

단지 난 내가 선택한 친구에게는 진심으로 최선을 다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