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정리

따로 또 같이

by혜준

내가 새벽 4시 반이면 일어나서 12시 넘어서야 자게 되는 이유는, 원활한 교통정리를 하려 하기 때문이다.

아침은 아침대로 저녁은 저녁대로 내가 입에 호루라기를 물고, 누구를 제일 먼저 깨워서 화장실에 보내고 그다음엔 누구를 깨워서 세면대로 보내고, 누구 다음엔 누구를 욕실에 배치해야 하는지 파악해 소환해야 부드럽게, 아침과 저녁의 시간을 낭비 없이 보낼 수가 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정체를 하게 되면 충돌과 갈등이 일어나 하루의 시작이나 끝을 기분이 상한 채로 있어야 하는 누군가가 생기기 때문이다.


식구 네 명이 뭐 그리 혼잡할 게 있나......하겠지만 여긴 화장실 구조가 한국과 조금 다르다.

한국 화장실은 슬리퍼를 신고 들어가면 좌변기와 세면대와 샤워 부스 혹은 욕조가 한꺼번에 배치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구조의 화장실이 부부침실에 작게 하나 더 있어서 변기가 두 개, 세면대가 두 개이지 않은가.

그런데, 여기 대부분의 맨션(한국의 아파트를 맨션이라고 부른다)은 변기와 세면대와 욕실이 각각 분리되어 있다. 그래서 네 식구가 하나씩 번갈아 쓰다 보면 아침저녁은 작은 교통체증이 일어난다.


세면대와 욕실로 통하는 출입문을 잠그고 핸드폰을 켜 놓은 채, 거울 앞에서 떠나지 않는 딸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하는 방법을 체득하기까지 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쟁했던가...

겨우겨우 열린 문을 통해 들어온 아들은 도끼눈을 뜨며 위협하는 누나의 시선을 피해 가며 또 얼마나 초고속으로 양치를 끝마쳤던가......(덕분에 치석으로 인한 치과 재검진......이런......)

아빠는 신기하게도 딸과 기가 막히게 겹치는 배변시간으로 인해 변기 위에서 얼마나 불안에 떨었던가...

딸도 호르몬의 영향으로 인한 "두 남자"의 참을 수 없는 생리적 위화감을 극복하기 위해 자기 나름대로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리라......


복닥거리는 교통정리가 끝나 모두 각자 잠자리에 든 밤이나 새벽에 혼자 일어나 앉아 있으면, 이렇게 교통정리를 하고 있는 것이 마치 지금 내가 내 삶의 순간순간을 역할에 맞게 배치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지금은 엄마로 조금 있다가 아내로 오후부터는 선생으로 선생 다음엔 또 혜준으로 하루에도 내 배역은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이동한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땐 내가 한 명 더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간절히 원했었다.

그럼 얼마나 여유가 있을까.

연년생 아이들에게 한 명씩 따뜻한 품을 나눠 줄 수도 있고, 한 명이 집에서 아이를 보고 있으면 한 명은 온라인 게임에 나가서 열심히 일을 하고, 한 명이 식사를 준비하면 한 명이 세탁된 빨래를 널고, 한 명이 마트에 가서 장을 보면 한 명은 조용히 카페에서 휴식을 취하고... 그런 상상을 많이 했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서로 하나밖에 없는 화장실에 먼저 들어가겠다고 아이들끼리, 때로는 남편까지 합세해 애어른 할 것 없이 북새통이었다. 남편도 늘 화장실이 두 개 있는 한국 아파트를 그리워했다.


아이들이 조금 커서 물리적인 엄마의 품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아서인지 지금은 또 하나의 내가 아니라, 하나뿐인 나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가 더 어렵다.

오히려 지금은 하나의 존재인 내가 엄마로서 아내로서 온라인 게임인으로서 각각의 역할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나를 적재적소에 위치시켜 하루를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하나뿐인 화장실과 세면대, 욕실을 서로 배려하며 쓰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의 이 교통정리도 언젠가는 끝이 나겠지.

엄마도, 아내도, 온라인 게임인도 아닌, 오롯이 나 자신 하나만 남게 되었을 때, 그때는 이제껏 모두를 배치하던 내가 비로소 나 자신을 어디에 두고 살아갈지 고민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그런데 남편은 150살까지 산다고 했으니까 아내로 살다가 갈 확률이 높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