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은 왜 떠났을까

오래도록 납득되지 않았던 결말

by혜준

몸을 움직이기 싫어하는 내가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바카라 읽어주기"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아이들에게는 이것저것 장르를 따지지 않고 읽어 주었다.

특히, 당시 365개의 이야기를 한 권으로 묶어서 매일 아이와 자기 전에 하나씩 읽어주는 동화바카라이 유행했었는데, 아이들이 재미있다고 해서 반복해서 읽는 이야기는 대부분 일본 전래 동화였다.

옛날이야기는 한국과 일본이 유사한 점도 많지만, 미묘하게 다른 점이 있어서 아이들에게 읽어 주면서도 내 머릿속에서는 "왜???"가 끊이질 않았던 것 같다.

아이들에게도 "왜 그런 거 같아?"하고 물어보기도 하고, 혼자 있다가 뜬금없이 그 "왜???"가 떠오르면 멍하니 결론도 없는 질문의 답을 찾아보려 하곤 했다.

"鶴の恩返し [tsuruno ongaesi] 은혜 갚은 학"이라는 이야기도 그중 하나였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가난하지만 마음씨 착한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겨울날 할아버지는 덫에 걸린 학 한 마리를 구해 준다. 며칠 후 한 젊은 여인이 찾아와 갈 곳이 없다며 하룻밤 묵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자식이 없던 노부부는 그녀를 딸처럼 여기며 함께 살게 된다. 어느 날 여인은 방에 틀어박혀 베를 짜겠다고 하면서 절대로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녀가 짜낸 천은 매우 아름다워 큰돈을 받게 되지만, 노부부는 점점 쇠약해지는 여인이 걱정된다. 결국 약속을 어기고 방 안을 들여다본다. 그곳에는 자신의 깃털을 뽑아 베를 짜고 있는 학이 있었다. 자신이 예전에 구해 준 바로 그 학이었다. 정체가 드러난 학은 더 이상 함께 있을 수 없다며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


내가 이 이야기에서 가장 의문이라고 할까, 납득이 가지 않았던 부분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게 되자 노부부의 곁을 떠나버리는 학의 행동이었다.

아이가 없어서 학을 마치 자신의 딸처럼 애지중지하며 예뻐했던 노부부를 두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훨훨 날아가는 학은 참으로 매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일본 전래 동화에는 등장인물이 갑자기 사라진다든지, 뜬금없이 나이를 먹어 버린다든지 하는 애매한 결론의 이야기가 의외로 많다.

비슷한 테마인 한국 전래 동화 "은혜 갚은 까치"는 까치가 자신의 목숨을 바쳐 끝까지 은혜를 갚는 것으로 맺어진다. 이런 결론은 죽은 까치가 딱하긴 하지만 관계의 맺음이 명확해서 미련이 남지 않는다.

물론, 여기서 한일 전래 동화를 비교해 논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전래 동화는 권선징악이든 죽음이든 해피엔딩이든 결론이 확실한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이에 비해 일본의 동화는 여지와 여운을 남긴다고나 할까.

학은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아니,

나는 학이 어떤 선택을 했으면 마음이 편했을까?

생각해 보면 나는 학이 떠나지 않았으면 했다.

노부부 곁에 남아 가족이 되어 주길 바랐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정작 나는 누군가가 내 선을 넘는다고 느끼면 학처럼 훌쩍 떠나버리곤 했으니까.


요즘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

이 이야기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건, 아마도 내가 이 이야기에서 인간관계의 단면을 읽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학이 떠나는 결말을 누군가와 완전한 관계를 꿈꾸었으나 현실의 한계를 깨닫고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인 고독을 선택한 이야기로 본다면 너무 과장된 해석일까.


나는 나와 상대방 사이에 어떤 선을 그어두고 상대가 그 선을 넘는 것 같으면 가차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관계를 끊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가 나에게 선을 긋는 느낌이 들면 내 진심을 오해하고 있다고 투덜대고 아쉬워했다.

나는 이제까지 누구에게나 학처럼 행동하며 살아왔으면서, 정작 누군가가 나에게 학처럼 행동하면 섭섭해했다.

상대방의 경계는 쉽게 넘으려 하면서도 내 경계는 존중받기를 원했다.


과연, 나는 상대방의 자발적인 고독과 그 상황을 얼마만큼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던가.

내 진심, 내 고독만을 중심에 두고, 학을 떠나보낸 노부부의 마음으로 나 자신만을 동정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 안의 이중잣대로 인해 학의 선택과 이야기의 결말에 대해 위화감을 느꼈듯이, 상대방을 대할 때도 내 자신의 모순을 이해하지 못한 채 어찌할 바를 몰랐던 것 같다.

알았다고 해서 금세 행동으로 반영되지는 않겠지만 알았으면 지금부터라도 변화하고 싶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더 늦기 전에 내가 자라온 환경과 받은 교육과 이제까지 살아온 내 경험을 통해 옳다고 믿어왔던 모든 것들을 다른 각도에서 다시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해본다.




링크한 유튜브 영상은, 학연영화(学研映画)에서 제작한 인형 애니메이션 명작《은혜 갚은 학(つるのおんがえし)》이다. 1965년 제작되어 1966년 7월에 극장에 공개되었다. 당시 최고 수준의 '인형 애니메이션(Stop-motion/Puppet Animation)'기법으로 제작되었다. 제12회 교육영화제 최고상 (文部大臣賞・문부대신상)이외 많은 상을 수상했다.

음향과 자막이 투박하고 거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옛 영상의 질감이 좋다.

다소 길긴 하지만, 시간이 있으신 분은 천천히 감상하시길 바란다.


https://www.youtube.com/watch?v=P4ER0vAYL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