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얼굴이 보고 싶네

작은 躾(시츠케) 하나쯤

by혜준

"안녕히 가세요~"

"안녀엉~"

수업이 끝나고 교실을 나가는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눈에 띄는 아이들이 있다.

수업 시간에 나온 지우개 가루를 바카라상 구석에 잘 모아 두었다가 교실에서 나갈 때 두 손으로 살살 담아서 나가는 아이들이 30여 명 클래스에 서너 명은 반드시 있다.

그냥 후후 불어서 바닥에 떨어뜨려 놓아도 청소하시는 분이 와서 매일 청소를 함에도 불구하고, 이 학생들은 아주 소중한 작은 새라도 쥐고 있는 것처럼 손에 지우개 가루를 살포시 쥐고 복도에 있는 휴지통에 조심스럽게 버리고 간다.

그런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시츠케가 참 잘 되어 있구나. 엄마 아빠 얼굴이 보고 싶네…“ 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서는 일상생활 속의 작은 행동들을 "躾(しつけ [sitsuke] 가정교육, 훈육)"라고 해서 어릴 때부터 가정이나 슬롯에서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에 새겨지도록 가르친다.

기본적으로는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한 것이 목적이지만, 사실은 엄격하고 무거운 이미지라기보다는 한자를 보면 알 수 있듯이, 身(몸)을 美(아름답게) 하기 위한 태도를 말한다.

일본인들이 시츠케를 통해 어떠한 행동과 태도를 아름답다고 하는가를 가만히 보면, 이들의 미의식을 조금 엿볼 수 있다.

물론 그 美는 단순한 가시적 아름다움이라기보다는, 사람의 됨됨이를 가다듬고 결국은 그 사람의 바른 삶의 태도가 포괄적인 美로 이어지게 된다.

예를 들어, 공공장소에서의 침묵, 깍듯한 인사, 정리정돈, 식사 예절, 자세와 물건을 정중하게 다루는 태도, 감정 조절과 인내심 등에서는 우리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이나 충동을 그대로 드러내기 전에 한 번 더 가다듬어 정리된 단정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우리 아이들의 경우, 딸은 한 살, 아들은 더 어려서부터 일본의 보육시설에 다닌 시간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많아서인지 우리 부부의 훈육보다 일본의 시츠케의 영향이 더 큰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르쳐 준 적도 없는 예의나 행동들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하고, 무엇보다 우리 부부를 시츠케하려고까지 한다.

다 같이 외출을 하는 날이면 아이들은 남편의 큰 목소리에 기겁을 하며 늘 입에 손을 대고 쉬쉬거리고, 내가 점원에게 뭘 좀 부탁하려고 하면 뭐 따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이는지 하지 말라고 질색팔색이다.

가끔 학교 생활에 대해 좀 묻거나 하면 난 정말 아무렇지 않게 한 말에 대해서 내 말투가 공격적이라며 같은 말이라도 좀 더 부드럽게 말할 수 없냐며 퉁을 준다. 부엌에서 접시나 그릇들을 떨그덕거리고 있으면 조금 살살 놓으라고 하기도 하고, 엄마나 아빠가 미안하다는 말이나 고맙다는 말을 깜빡 잊어버리면 그냥 넘어가지 않고 꼭 "ごめんなさいは?([gomennasaiwa] 미안해는?)" "ありがとうは?([arigatouwa] 고마워는?)"하고 꼭 사과나 감사의 말을 받아 내고야 만다.

아... 피곤해...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게 익숙하고 당연한 것일지 모르겠지만, 우리 부부는 서로 마주 보며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이것 또한 맞고 틀림이 아니라 다름이라고 이해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집에서 엄마와 아빠에게 이토록 엄격한 시츠케를 하는 "너희들은 밖에서 처신 잘하고 있는 거지..."

하고 철석같이 믿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누군가 내 아이들을 보고 "저 아이들의 부모님은 참 훌륭한 사람이겠지..."

하고 부러워하는 모습을 은근히 상상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 상상이 망상에 불과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지난 4월, 딸아이의 교실에서 있었던 학부모 회의에 출석해서 난 정말 구멍이 있으면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새 학기라서 이름 순서로 바카라상배치가 되어 있었고, 딸아이의 자리는 맨 앞, 그것도 교탁 바로 앞이었다.

바카라상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서랍에 손을 넣어 본 나는, 회의가 끝나고 교실을 나설 때까지 식은땀이 나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교칙상, 수업 후 바카라상 서랍 속에는 아무것도 없어야 하는데, 딸의 바카라상 서랍 속은 온갖 프린트들이 가지런히도 아니고 들쑥날쑥 신나는 파티 중이었다.

아... 왜 또 맨 앞자리냐고...

뒤에서 보는 엄마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게다가

우리 딸아이의 담임선생님은 나와 조금 다른 의미로

"에효... 네 엄마 아빠 얼굴이 좀 보고 싶구나..." 하고 궁금해하시지 않을까 두려웠다.

사실은

그 순간 가장 부끄러웠던 것은 딸아이의 서랍이 아니라, 그 서랍 속 어수선함이 내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자주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바쁜 일상이지만 글을 쓸 작은 여유가 생긴 덕분이기도 하겠다.

그리고 온라인카지노의 글벗 몇 분과 소통을 하게 되면서, 이제까지 스스로를 가둬 두고 있던 밀폐 공간에 작은 창문을 하나 열어 두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강산이 다섯 번이 바뀌는 동안 살아오면서 나는 과연 내 됨됨이와 내 삶에 대해 어떤 마음과 태도로 살아가고 있었고 지금을 살고 있는지...

둥글둥글 원만하게 여유를 가지고 편안하게 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확하게 딱 부러지게 꼼꼼하고 현명하게 사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기준이나 가치관도 없이 그저 기분과 감정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하루하루를 채워온 것은 아닐까.

이렇게 정돈되지 못한 내 모습이 아이들에게 대물림되는 것만 같아 조용히 거울을 보듯 반성하게 된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삶도 아니고, 자기만족만을 위한 삶도 아닌 삶을 살아내고 싶어 하는 나는 너무 이상적이고 욕심스러운 사람일까...

더 늦기 전에, 나와 아이들의 삶을 버텨 줄 작은 躾(시츠케) 하나쯤은 품고, 내 몸과 태도(身)를 아름답게(美)가다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