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언어

"우리는 초능력으로 대화하지요"

by혜준

처음 만나는 일본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나에게 묻는 질문 한 가지가 있다.

"남편은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그들은 이게 왜 궁금한 걸까?

나이나 직업 등 사적인 질문은 실례라고 생각해서 좀처럼 묻지 않는 사람들이

왜 배우자의 국적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묻는 걸까?

게다가, 우리 아이들이 한국 성씨인 걸 알면서도 물을 땐

괜히 무슨 속뜻이라도 있나 의심하게 된다.

할 말이 없어서 그런가?

게다가 더 이상한 건,

남편은 한국 사람이라는 대답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은 무슨 말로 대화를 하나요?"라고 덧붙여 묻는다.

당연히 한국말이지 그걸 말이라고 하나?

국적이 다른 부부라서 공통된 언어가 없는 경우엔 궁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둘 다 한국 사람인데요...

당신들 일본인 부부는 모국어 놔두고

영어나 다른 외국어로 대화를 하나요? 인텔리 부부?

하긴...

우리는 한국말을 하긴 하지만,

갑자기 생각이 안 나는 단어는 일본어로 대신하기도 하고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블라블라 떠들어 댈 때는

뒤죽박죽 짬뽕이 되기도 한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니

누군가가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다면

도대체 저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라고 이해를 못 할 상황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부부들은

단순히 모국어나 외국어라는 언어 차원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거나 이해할 수 없는,

그리고 이해할 필요도 없는,

단 둘만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리고

둘만의 언어를 서로 배우고 익히기 위해서는

끝없이 서로를 향해 언어의 캐치볼을 주고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그 노력과 수고를 하지 않거나 게을리한다면

부부라는 관계는 그 유지가 참 어렵지 않을까.

그 어떤 관계보다 상대방이 자기 편으로 있어주길 바라는 관계.

그게 부부라는 관계.

나는 상대가 내 편이라고 느끼는 근거를

성실함을 토대로 한 서로의 받아들임에서 찾고 싶다.


언어를 가르치면서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외국어의 습득 과정이 남편이라는 한 사람을

내 편으로 받아들이는 과정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한국어를 공부하다가 짜증을 내며 가끔 이렇게 질문한다.

"일본어는 이런데, 한국어는 왜 저런가요?"

그럴 때 내 대답은,

"그건 그게 한국어니까..."

"언어 습득에 "왜?"는 없어.

있는 그대로의 한국어를 받아들이는 게 외국어 학습이야."

학생들에게는 일본어와 한국어는 문법이 유사하니까,

그 작은 차이가 더더욱 혼란스럽고 짜증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다름을 귀찮아 하지 않고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언어는 비로소 내 것이 되어 간다.


내가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언어가 있듯,

내 곁의 이 사랑하는 사람을 온 마음을 다해 받아들이고 싶다.

물론,

이해되지 않는 구석도 많은 사람이지만

“왜?”라는 물음 대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먼저 마음을 열어 두려고 한다.

그리고

마음을 연 다음에는 끝없는 성실함도 필요하리라.

한 번 납득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번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지루한 반복.

이런 면에서

사람을 받아들이는 일은 외국어 공부와 참 많이 닮아 있다.


다만...

부부의 언어가 일반적 언어와 다른 점은,

그 의미를 사전처럼 정리해 번역하고 통역할 수 없다는 점이려나...

부부의 수만큼 부부의 언어가 존재한다.

두 사람 고유의

말과 목소리, 눈빛, 말과 말의 간격,

작은 동작, 숨소리조차 일반화 할 수 없다는 것.

두 사람 사이의

그 둘만의 향기와 온기와 무게를 가지고 있어서

그걸 매번 서로

읽고 해석해가며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그와

연애 6년, 결혼을 한 지 20여 년이 되어 가는 나는

한국어를 거치지 않고 일본어가 입에서 나오듯,

그와도 언어를 거치지 않고 마음이 닿을 때가 있다.

언젠가는

그 어떤 언어도 필요 없이

텔레파시나 초능력에 가까운 경지에 이르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일본 사람이 또 나에게

"당신들은 무슨 말로 대화를 하나요?"

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초능력으로 대화하지요"

라고 대답하게 될 날이 올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