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았으면...

15세 인간이 위기를 넘기는 법

by혜준

인생을 살다 보면 위기는 누구에게나 닥치기 마련인데, 다들 주어진 그 위기를 어떻게 넘기고들 있을까?

우리는 굽이굽이 삶의 위기를 헤쳐왔고 혹은 지금도 헤쳐가며 꾸역꾸역 살고 있다.

혹은 그 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애쓰다가 절망도 하고 좌절도 한다.

나는 이런 우리들의 모습이 애틋하고 짠하다.

내가 무엇보다 사람이라는 존재를 사랑스럽게 생각하고, 알고 싶기도 한 이유이기도 하다.


며칠 전, 나는 15년 인생에 최대 위기였을 상황에서 아들이 의연히 대처하는 모습을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면서, 경탄을 금치 못했다.

내가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가끔 아들은 뒤에서 내 어깨를 쭈물쭈물하면서 "俺を ネタ にするなよ([orewo netani surunayo] 내 얘기 쓰지 마)"라고 한마디씩 툭 던지곤 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안 하려고 하는데, 이 이야기는 위기에 직면한 한 인간이 그것을 헤쳐나가는 모습으로 정리해 둠으로써 나의 인간사랑과, 앞으로 내가 아들을 믿는 근거로도 삼고 싶고, 또한 자신의 아이를 믿지 못하는 부모들에게 작은 희망을 건네고 싶은 마음에 몇 자 적어 본다.


LINE으로 아들이 위기 상황을 알려왔을 때, 마침 그날은 개교기념일로 난 수업이 없는 날이었다.

내 일터가 학교라 그런지, 아이들은 자기들이 학교에 가는 날 내가 안 나가면 상당히 억울해하거나 부러워한다.

그래서 그날도 굳이 학교에 안 간다는 말을 하지 않고 집에 있던 참이었는데, 기가 막힌 타이밍에 아들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암튼 내가 일터에 있는 동안은 절대 연락을 안 하는 아이에게서 온 연락에 우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지금 바로 조퇴를 하고 집으로 온다는 것이다.

학교에는 도착했으나 아직 수업 시작 전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아들의 말에 내 귀를 의심했다.

살다 살다 이런 일이 있는가...

일단 조퇴를 하라고는 했지만, "왜???"가 계속 이어지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자초지종을 자세히 물어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아들은 지나간 일에 대한 설명보다는 다음의 자기 행동에 대해서만 차분히 보고를 했기 때문이었다.

난 엄청 당황했지만 내색을 하면 아들이 동요될 것 같아 담담하게 네 판단대로 하고 오라고 했다.

아들은 담임선생님께 있는 그대로를 다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닌 적절한 말로 말씀드리고 조퇴, 아니 수업 전이니 결석을 하고 왔다.

이 일로 중고등학교 6년 개근을 노렸던 아들은 목적달성이 어렵게 되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들의 판단은 옳았던 것 같다.


아들이 혼자 학교를 나와, 온갖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을 듣고, 나는 일단 등을 툭툭 두드려주며 위로도 하고 안심도 시켰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어떤 위기였으며 아들이 어떻게 대처했는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기로 하겠다.

익명이긴 하나 아들의 명예(?)를 위해서...

내가 만약 그 상황이었다면 나는 과연 아들처럼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성적은 뒤에서 세면 금방이라고 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 이런 위기 상황에서의 민첩하고 침착한 행동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리숙하고 손재주도 운동도 재빠르지 못해 늘 속으로 "평강공주"를 만나야 할 "온달"이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절체절명의 순간적인 상황에서 정신줄을 놓지 않고 사리분별을 하며 행동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아들은 잠시 숨을 고른 후에, 내일 등교했을 때 학교 친구들이 퍼부을 질문 공세와 여러 가지 반응들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고민하는 듯했다.

나는 일이 일인 만큼 내가 어쭙잖게 조언을 한다고 해도 그게 해결이 될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들을 보는 내내 "나 같았으면... 나 같았으면..."이라는 생각이 뱅글뱅글 맴돌아 눈앞이 캄캄해지곤 했다.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아들이 침착을 유지하는 모습에 난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의외로 그릇이 큰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등교하는 아들이 "아~어떡하지..."하며 싱긋 웃는 뒷모습을 배웅하면서 내가 더 긴장하고 말았다.

일을 끝내고 집에 오니 아들은 항상 그렇듯 switch로 열심히 "태고의 달인(太鼓の達人)"을 연습하고 있다.

학교에서 어땠냐고 물으니, 친구들에게 숨기지 않고 그 위기의 전말을 시원하게 털어놓고 모두와 함께 웃음으로 승화시켰다고 한다. 어머나...

잘못하면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수도 있는 일을 이렇게 긍정적인 마인드로 전환시킬 수 있다니...

이 녀석 내가 학습 스트레스만 안 주면 평생 띵가띵가 재미나게, 자기 나름대로의 삶을 의연히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을 갖게 되었다.

누가 될지 모를 "평강공주"님은 엄청 스트레스를 받을지라도…

내가 애정하는 아반작가님은 이런 내 글을 또! "아들자랑"하는 팔불출 "親バカ[oyabaka]*"가 썼다고 농담을 하실지 몰라도 난 절대 자랑을 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다.

나처럼 본인의 아들들에 대해 불안하고, 도대체 앞으로 뭘 어떻게 해 먹고 살아갈지 막막한 부모님들에게 자신 있게 외치고 싶을 뿐이다.

우리 모두 너무 걱정하지 말자고.

大丈夫!([daijoubu] 괜찮다)라고.

何とかなる([nantokanaru] 어떻게든 될 거)라고.

어쩌면 우리보다 더 많은 가능성과 생명력을 가지고 있을 아들들을 믿어도 될 것 같다고.

그리고

어떤 위기에 직면해서도 열심히 발버둥치는 이런 우리 인간의 모습이 너무나 너무나 사랑스럽지 않냐고.



*親バカ[oyabaka]:"親バカ(おやばか 부모바보)"는 자기 아이가 예뻐서 어쩔 줄 모르는 순수한 고슴도치 부모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