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벙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

by혜준

일요일 아침은 가끔 아들과 나란히 집 앞에 있는 맥도널드에 가서 "朝マック( [asamakku] 맥모닝)"를 사 와서 먹이곤 한다. 정크푸드라고 남편은 질색팔색 하지만 난 너무 억제하는 것도 정신건강에 해로울 것 같아(아침 식사 준비가 싫어서가 절대! 아님) 사 준다.


고소한 감자튀김 냄새(남편은 바퀴벌레가 꼬이는 냄새라고 한다. 우리는 바퀴벌레 親子([oyako] 모자))가 후각을 자극하는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어리고 갸리갸리해 보이는 남학생이 주문을 받는다.

첫인상은 영락없는 新米([sinmai] 신참)이었다. 주문을 받는 자세가 신참!이라고 온몸으로 표현을 한다.

주문을 하고 나서 쿠폰을 쓰려고 하니 잘 안 된다.

어플에 익숙지 않은 나와 신참 아르바이트생이 폰을 들여다 보고 꾸물거리는 걸 보고 있던 베테랑 점원언니가 번개같이 달려와서 척척 해결해 준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베테랑 언니가 커피에 크림과 설탕이 필요하다고 묻는데 그 묻는 템포며, 언니가 집에 가져가기 위해 포장을 하는 데 그 손놀림이며, 뭐 하나 빈틈이 없고 꼼꼼한 게 정말 마음에 들었다.

전에 점원이 몇 번 실수를 해서 잘못된 사이드 메뉴가 나오거나 커피가 줄줄 새거나 하는 일이 있던지라 그 시원시원한 일솜씨가 아주 기분이 좋았다.


가게를 나오면서 내가 아들에게

"일은 저렇게 해야 하는 거 같아. 베테랑은 틀리네...... 저 어리벙하던 친구는 신참인가?"

이 한 마디가 기분 좋고 평화로운 아침을 순식간에 전투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엄마는 뒤에서 그런 말 하는 거 아냐"


헐...... 내가 뭘????

아들이 말하길 그 남아르바이트생은 신참이 아닐뿐더러 일손이 조금 더디다고 해서 엄마가 이렇게 뒤에서 비난을 하는 건 옳지 않다는 것이다.

비...... 비난이 아니라 난 그저 베테랑 언니의 일솜씨를 칭찬하고 싶었던 것뿐이란다.

내가 이렇게 변명(?)을 해도 아들은 막무가내이다.

엄마가 그럴 줄 몰랐다느니, 본인 앞에서는 그런 말 못 하면서 왜 뒤에서 그런 말을 하냐느니.

가만히 듣고 있자니 이걸 그냥 가만히 두면 아들이 슬롯에 나가서 혹시 일을 잘 못하거나 자기 몫을 하지 못했을 때, 누군가의 지적이나 주의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주의한 사람을 원망하는 사람이 되진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또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리고 필요이상으로 아들이 그 남아르바이트생을 자기와 동일시하는 듯해서 불안해졌다.


우리 둘의 공방전은 집에 와서도 계속되었다.

영문을 모르는 딸아이는 우리의 언쟁을 지켜보며 음식을 꺼내더니

"아! 난 사이드메뉴 애플파이 부탁했는데..."하고 중얼거린다.

예전 같으면 당장 바꿔 오라고 짜증을 낼 딸아이가 우리의 험악한 분위기에 눌려 각자의 접시에 햄버거를 담고 음료를 세팅해 놓고 서비스가 아주 일품이다.

쿠폰으로 재주문할 때 애플파이로 정정을 하지 않아 그냥 ハッシュドポテト(해쉬 브라운)이 나온 것 같다.

이를 놓칠세라 아들의 공격이 또 들어온다.

"엄마가 베테랑이라고 했던 점원도 실수가 있지 않냐고. 그 남자 점원한테 어리벙하다고 하는 건 엄마의 편견이야"

아니, 아니...... 애플파이 정정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재주문과정에서 일어난 단순미스라고!

먹으면서도 우리는 계속 티격태격했다.

딸은 심드렁하게 옆에서 듣고 있더니 먹고 나서는 얼른 자리를 피한다.

아들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이야기가 흘러 흘러 일본 엔화 이야기에서 전후 일본의 경제 상황, 그리고 역사 공부 이야기와 심지어 한국의 슬롯 문제까지...... 처음엔 서로 언성을 높였던 우리들은 말꼬리를 잡으면서도 조금씩 이야기와 화를 풀어 가고 있었다.

나도 잘난 척하면서 떠든 게 아니라 아들의 질문에 대답을 하다가 잘 모르는 게 있으면 "나도 잘 모르지만......"이라고 폰으로 찾아가면서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아들도 조금씩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서로 감정이 잦아들고 나서 아들에게 내가 아침에 어떻게 하길 원했냐고 하니

먼저 그 베테랑 누나를 칭찬하는 건 있을 수 있지만, 그 남아르바이트생이 어리벙하다는 말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리고 그 말을 남학생에게 직접 할 수 없다면 입에서 꺼내지를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그 말을 했을 때 엄마가 바로 인정했으면 자기는 그렇게까지 길게 말하지 않았을 거라고 한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기는 하나, 솔직히 그 앞에서 인정하기가 너무 싫었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한 건데 그게 그렇게 나쁜 거야?" 마지막까지 내 빼딱한 마음이 불쑥 올라와 말해 버렸다.

"엄마, 그게 いじめ([ijime] 집단 따돌림) 하는 사람들의 말하는 방식이야"

이 한 마디에 할 말을 잃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납득이 갔다.

내가 의도치는 않았더라도 맥도널드 매장에서 그 남아르바이트생이 계산대에서 살짝 밀려 나와 여자 점원이 쿠폰을 능숙하게 처리하고 있을 때 옆에서 바라보며 느꼈을 자괴감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들은 그게 보였을까?

부끄러웠다.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도 부끄러웠지만, 그걸 끝까지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나 자신의 쓸데없는 고집이 더 부끄러웠다.

내일이 중간고사인데 오락실 간다고 “엄마, 500엔만......" 하고 부끄러움도 없이 손바닥을 내미는 아들이,

오늘은 키보다 훨씬 훨씬 더 커 보인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