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불댄 입은 오래 기억한다
이솝 우화나 우리나라 속담에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늪가의 개구리와 소년들」)"라는 말이 있다.
보통 맞아 죽는 개구리에게 포커스가 맞춰진다. 쯧쯧... 불쌍한 개구리...
나도 개구리가 불쌍하고 개구리를 보호하고 싶다.
하지만 오늘은 악의 없이 장난으로 돌을 던진 아이의 마음도 조금은 생각해 보고 싶어졌다.
물론 녀석은 엄마한테 눈물 쏙 빠지게 혼이 나서 두 번 다시 개구리에게는 돌을 던지지 않는다고 쳐도, 만약 아이가 살아가면서 또 자신의 악의 없는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가 상처를 입거나 힘들어지게 된다면, 그 아이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을까.
그 아이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는 어떤 기준과 판단으로 행동을 해야 할까... 늘 조심스럽고 무슨 일을 하든 망설이게 되진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봤다.
자기의 악의적 의도에 의해 누군가를 아프게 했다면 그건 죗값을 치러야 할 것이고 상대가 용서할 때까지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럴 경우도,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바카라임을 져야 하고 평생 죄바카라감을 짊어지고 살아야만 하는, 의외로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사는 게 어렵게 느껴진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미술 선생님이 학기 중에 새로 오셨다. 새로 오신 선생님의 첫 미술 수업.
여고의 남자 선생님, 그것도 미술 선생님은 특별했다. 이름을 가르쳐 주지 않는 선생님은 더더욱 특별했다.
아이들이 아무리 아우성을 쳐도 선생님은 완고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수업 내용은 예전 선생님과 하던 포스터 글씨 쓰기의 마무리였다.
선생님은 우리들의 그림을 천천히 둘러보시며 바카라상 사이를 걸어 다니고 계셨다.
선생님이 내 앞을 지나치시며 그림을 찬찬히 보시길래 쑥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선생님, 글씨가 기형아 같아요..."라고 말해 버렸다.
차별적인 의도가 전혀 없는, 그저 글자 모양이 뒤틀려 있다는 뜻의 표현이었다.
내가 왜 그때 그런 말을 했는지 나도 모르겠다.
내가 평상시에 선생님들께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아이가 아니었기에 지금 생각해도 너무 이상하다.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나왔으며, 어디서 그런 말이 튀어나왔는지...
내 말을 듣고 선생님은 멈칫! 하시더니 장난스러운 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보셨다.
그러고 나서 내 볼을 살짝 꼬집으시더니 허리를 펴고 칠판 앞으로 가셨다.
"이 녀석들... 다 알면서... 그래, 내 이름 이 기형이다"
하고 큰 소리로 이름을 말씀해 주셨다. 아이들이 일제히 아하하하 웃었지만 난 웃을 수 없었다.
뭐... 뭐지? 나 정말 선생님 이름 몰랐는데... 일부러 그런 거 아닌데... 뭐지?
선... 선생님, 오해예요. 저 일부러 그런 거 아니라고요. 진짜예요.
그리고, 선생님 이름 멋있어요(나에게 초능력이 있었나?).
15 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내가 무심코 던진 돌에 대한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새록새록하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후기 수업이 시작된 첫날이었다.
학생들은 여름 방학이 지나고 나면 제법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탈피를 해서 온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해 아직 야리야리하던 학생들이 방학 한 두 달 사이에 예쁜 언니, 오빠로 성장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는 것도 이 일의 재미 중 하나이다.
당시 항상 몰려다니는 친구들 4명이 있었는데, 그날도 교탁에서 가까운 자리에 앉은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같이 수다를 떨게 되었다.
얘는 남자 친구가 생겼네, 쟤는 헤어졌네 호호깔깔 얘기를 듣고 있으면 정신은 없지만 괜히 같이 들뜨게 된다.
얘기를 들으면서 무심코 한 학생의 얼굴을 봤는데, 방학 동안 쌍꺼풀 수술을 한 듯했다.
나는 주저 없이 좋은 뜻으로
"어머... 쌍꺼풀 너무 자연스럽게 잘 됐다"라고 했고,
그 말이 끝나자 나머지 친구들 세 명이 동시에
"へえ~マジで?(어머, 정말?)"
"なんで言わなかったの?(왜 말 안 했어?)"
"なるほど、なんか雰囲気変わったと思った(어쩐지, 뭔가 분위기 바뀐 것 같더라니)"
등등 세 친구들이 쌍꺼풀 친구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호들갑이다.
쌍꺼풀 친구의 얼굴이 금세 새빨개진다.
순간 직감했다. 주바카라맞은 내 입이 쓸데없는 정보를 발설했다는 것을...
가벼운 대화 중에 아무런 생각 없이, 악의 없이 튀어나온 말이었다.
일본은 지금도 성형에 대해서는 본인이 말하지 않는 이상, 함구를 해 주는 게 일반적 매너인 것 같다.
성형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본인도 이야기하지 않고 다른 사람도 굳이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보다 15여 년 전이면 더더욱 노코멘트가 상식임에도 불구하고, 난 정말 아무 생각도 없이
입을 나불댔던 것이다.
그 친구에게 얼마나 미안했는지, 그리고 나 자신이 얼마나 경박하게 느껴졌는지...
○○さん、ごめんね。 とても可愛かったよ(○○상, 미안해. 너 너무 예뻤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실수를 안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참회를 한다고 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엎지르지 않기 위해 어떻게 살면 좋을까... 를 생각하는 요즘이다.
아마 나는 또 실수를 할 것이다.
악의 없이 누군가를 민망하게 하고, 상처를 주고, 돌아와 혼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괴로워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적어도, 그런 순간들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누군가의 표정을 오래 마음에 남기는 사람으로, 조금 더 조심스럽게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