わがまま한 나의 인간관계론
연휴가 끝나고 돌아간 학교에는
학기 초의 탱탱한 긴장감이 풀어져 5월 초순의 지금 날씨처럼 나른하게 늘어진 학생들의 자세와 시선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연휴를 아르바이트 혹은 휴가로 바쁘게 보낸 피로가 모두의 어깨에 뽀얗게 쌓여 있다.
나도 연휴 동안 집에서 쉰 건지 아이들 뒷바라지를 한 건지, 몸은 쉬었는데 마음은 그리 쉬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엔진이 걸리지 않는다.
난 1년 중에 황금연휴가 끝난 지금부터 6월 말까지가 가장 힘겹다.
더위가 추위에 비해 10배 이상 견디기 힘든 나는, 차라리 7월이나 8월의 격렬한 더위는 각오도 되어 있고 여름방학이 있어서인지 견딜만한데, 점점 더워지고 공휴일 하루 없는 이 6월을 버티기가 참 지루하고 길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고문을 하느니 차라리 빨리 죽여라!" 이런 마인드? 좀 위험한가?
연휴가 끝나면 시작되는 회화 수업이 오늘 있었다.
1학년부터 4학년까지 프리토킹을 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참가 가능한 수업인데, 솔직히 난 이 회화 수업은 담당하고 싶지 않다. 학생들 레벨이 천차만별로, 한글도 모르는 상태에서 회화가 하고 싶어서 오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이미 어학연수 등으로 한국어가 유창한 학생도 있어서, 누구에게 기준을 두어야 할지 난감하기 때문이다. 교재로는 회화 수업을 진행할 수는 없어서 학생들의 레벨과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첫 시간은 스몰 토킹식으로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수업을 듣는 목적과 자신의 학습이력, 목표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 彼氏([karesi] 남자친구)와 彼女([kanojo]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현재 여자친구가 없다는 한 남학생에게 누군가가 사귀지 않을 거냐고 물으니, 한마디로 "필요 없어서..."라고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다들 와하하하 웃고 화제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물론 그 학생이 갑작스러운 질문에 가볍게 던진 말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은 계속 마음에 남아,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도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과연, 恋人([koibito] 연인)이라는 관계가 "필요"에 의해 존재해도 되는 것일까.
한순간에, 혹은 어느 틈엔가 자연스럽게, 내 머릿속과 마음속을 차지하게 되는 사람이 연인이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 나는 너무 고리타분한 로맨티시스트이려나.
그 남학생이 어느 날 문득 "아! 슬슬 여자 친구가 필요한데..."라고 생각해서 선택한 彼女가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 아니기를 기도한다. 아니, 이 세상의 모든 딸이 아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누구라도 좋으니 "내가 필요해서" 연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네가 필요해서" 우린 연인이 되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나에게 있어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심심해서, 내가 외로워서, 내가 뭔가를 혼자 하기 힘들어서, 내가 앞서가기 위해서, 내가 눈에 띄기 위해서 누군가를 내 필요에 의해 붙잡아 본 기억은 별로 없다.
왜냐하면 난 원래 혼자라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기도 하려니와, 누군가를 내 필요에 의해 끌어당길 만한 매력도 용기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필요로 해야 할 때조차 나는 주변머리가 없어서 늘 기회를 놓치고 뒤로 밀리기 일쑤였으니까.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난 자연스럽게 "縁"이라는 걸 의식하게 된 것 같다.
뭔가 일이 틀어져도 관계가 끝이 나더라도
이 "縁"이라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래... 여기까지야. 괜찮아."하고 스스로를 달래면
다음 날 나는 다시 거뜬히 일어날 수 있었다. 아니, 일어나야만 했다.
내가 누군가와 연결이 되었을 때는 그건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다. 난 눈에 보이지 않는 끌림을 믿는다.
그 끌림을 소중히 하지만, 그 끌림의 지속에 대해서는 내 욕심과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끌림의 지속에 있어서도 서로의 의지와 노력으로만은 어쩔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운명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지만.
난 꾸밈이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 끌린다. 그래서, 끌리는 사람에게는 이미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 사람이 어떤 모습을 보여도 나는 그 사람이 좋다. 그게 그 사람이니까.
내 취향에 맞게 그 사람을 바꿀 생각은 처음부터 없다.
그래서인지 나도 내가 끌리는 사람에게는 꾸밈없는 내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
상대방이 그런 내 모습에 질려서, 실망해서, 짜증 나서, 혐오스러워서, 멀어지게 된다면, 그게 그 사람과 내 관계의 종착역이려니 한다.
상대의 입맛에 맞춰서 나를 바꾸거나 꾸미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런 점이 예의가 없거나 정이 없거나 싹싹하지 못한 사람으로 보일지라도...
상대방에게 맞추려고 내 신념을 바꾸는 행동은 상냥함이 아니라 위선이나 가식이라고 생각하는 이상한 고집이 항상 내 몸 어느 한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는 것만 같다.
(아직 비 오는 날 먼지 날 때까지 안 맞아서 그런 거라고 말할 누군가가 생각난다)
わがまま([wagamama] 제멋대로)인 나의 인간관계론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지 예측 불가하나,
"고문을 하느니 차라리 빨리 죽여라"와 같은 마인드로
"사람 간을 보느니 차라리 우리 보지 말자"는 주의를 표방하면서
오늘도 나는 내가 끌리는 사람들이 반기든 말든,
하지만 예의를 갖추고, 밝고, 꾸밈없는 마음으로 다가가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