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부엌에서 도망쳤다

요리 못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by혜준

일요일 오후, 나는 또 도망치듯 다림질을 시작한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아이들 교복 와이셔츠 12장과 손수건을 한꺼번에 다림질한다.

지금 같은 계절에는 다림질을 해도 덥진 않지만, 여름에 다림질을 하려면 너무 덥다.

에어컨을 틀어 놓고 해도 땀이 나고 습기로 짜증도 난다.

여름엔 폴로셔츠를 입으면 될 것을 아들은 꼭 반팔 셔츠를 고집하고, 딸은 여름에도 긴소매 셔츠를 입으려고 한다.

처음엔 스팀다리미로 쉽게 좀 해보려고 했는데, 내가 스팀다리미를 잘 못 다루는 건지, 원래 그렇게 밖에 안 다려지는 건지 다려진 상태가 후줄근하고 맘에 안 든다.

역시 다림질은 바닥에 판을 놓고(화투 칠 때 쓰는 쑥색 미군담요가 제격이지만) 다리미에 체중을 실어 꾹꾹 눌러가며 쓱쓱 다리는 게 최고다.

남편은 금세 구겨질 걸 뭐 하러 다리냐고 시간낭비라고 말리지만, 구겨진 셔츠를 입고 있는 걸 보면 그게 누구든 마치 애정과 보살핌을 못 받고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 안쓰럽다.

반찬이나 하나 더 챙겨 먹이지... 하는 남편의 속마음이 들리기도 하지만, 난 음식보다는 빨래나 청소에 신경과 시간을 더 쓰게 된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 한다면, 衣食住 그중에 제일은 뭘까?

내가 가장 관심과 흥미가 있는 건 먹는 것도 사는 곳도 아닌 입는 것이다.

옷을 잘 입는 멋쟁이 패셔니스타라는 게 절대 아니고, 가사노동 중에 솔선해서 가장 부지런하고 꼼꼼히 하는 게 세탁이나 옷장 정리라고 해야 맞는 말이겠다.


食은 그저 배만 부르면 뭐든 상관없어서, 이런 나 때문에 맛난 집밥을 못 얻어먹는 남편이 많이 불쌍하다.

근거도 없이, 요리는 하면 누구나 다 되는 건 줄 알았다. 엄마도 결혼하면 다 한다고 날 시키지 않았다.

물론 결혼하고 나서는 요리를 시도해 보았으나, 남편이 말하길 시간과 정성에 비해 결과가 너무나 유감스럽다며 본인이 뚝딱뚝딱 남자 요리를 만들어 주곤 했다. 지금도 아이들은 나보다 남편의 요리 실력을 더 신뢰한다.

사람들은 나에게 집에서 주로 한국요리를 하느냐, 일본요리를 하느냐.. 고 자주 묻는다.

대답하기가 정말 곤란하다.

"저보다 남편이 요리를 더 잘해서 남편이 주로 요리를 해요"

라고 하면 사람들은 다른 집안일은 거의 다 내가 하는데, 요리를 하는 남편에게 더 많은 찬사와 칭찬을 준다.

그런 남자 없다고… 쳇!

남편이 요리를 하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 고마운 건 인정한다.

맞벌이 부부가 가사와 육아를 분담하는 건 당연한 건데, 다른 것보다 "요리"에 대해서는 다들 지나치게 칭찬이 후하다... 고 난 느낀다.

내가 이렇게 느끼는 것은, 단순히 요리에 대한 나의 콤플렉스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의 요리에 대한 기준이 상당히 높다 보니, 남편의 요리는 요리라고 여기지 않는 오만함일 수도 있다.

나에게 있어서 집밥은, 기본인 국과 밥, 그날 만든 반찬 두서너 가지와 밑반찬 서너 가지, 메인 요리 하나는 있어야 밥을 차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편이 차려 놓은 밥상은, 남자 요리답게 메인 요리 하나 딱! 놓고 집에 있는 밑반찬으로 끝이다. 국은 일본 된장국에 잘라진 미역 동동 띄운 것으로 대신한다. 물론 나와 아이들은 맛있게 먹고 감사도 한다.

누군가가 해 주는 밥이라면 낫토를 섞어 주는 것만으로도, 아니 꺼내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이다.

다만, 나 자신이 요리를 하려고 하면 이 놈의 높은 기준이 나의 자신감과 의욕을 모두 가져가 버린다는 것이다.

요리를 하기 전부터 메뉴에서 막힌다.

반찬은 이거랑 이거를 하면 겹치고, 이거에는 이게 맞고.... 등등 하기 전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에잇... 몰라!"

하고 부엌에서 도망치는 게 내 요리 포기의 기본 패턴이다.


난 솔직히 집에서 요리하는 것보다 밖에서 일하는 것이 천만 배, 백만 배 더 자신 있고 맘이 편하다.

그렇다고 "나 일 하니까 요리 좀 못하면 어때!!" 하고 큰소리 칠 뻔뻔함은 없다.

오히려 요리를 못하는 건 인간으로서 큰 결점이라도 되는 것 같아 늘 마음이 많이 불편하다.

그렇다면 피하지 말고 맘먹고 요리 학원에 다니거나, 요리를 잘하려는 노력을 좀 해 보면 어떤가..

라는 조언을 받기도 하지만 정말 요리는 하기 싫다.

아니, 무섭다.

머릿속 이미지의 나는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의 셰프, 혹은 어느 종갓집 맏며느리와 같은 후덕하고 여유 있는 모습인데, 칼질도 어리버리하고 소금, 설탕의 양도 일일이 계량스푼으로 벌벌 떨면서 넣는 현실의 나 자신을 직면하는 것이 너무 두렵다.

탁하면 마술처럼 먹음직스러운 요리가 짠하고 등장해야 하는데, 실제로 내가 완성한 요리의 억울한 비주얼을 봐야 하는 것도 무섭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쩌면 나는 요리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요리를 잘하지 못하는 나를 마주하는 것이 두려운 건지 모르겠다.


料理라는 의미가, 사물(料)을 능숙하게 처리(理)하는 것이라고도 한다면,

어쩌면 난 내 삶이라는 요리도 지금껏 이렇게 무섭다고 피해왔던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상처 입을까 봐, 실패할까 봐, 원망을 들을까 봐, 비난을 받을까 봐,

해 보기도 전에 미리 줄행랑을 쳐 온 건 부엌에서의 요리뿐만이 아닐 수도 있다.

결과에 다다르기 전에

소소한 마음의 흔들림과 불편함이 싫고 두려워서, 외면하고 회피해 온 지난 내 시간들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깨닫게 된 지금 이 순간부터

서툴고 엉망인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고 내 삶을 한 번쯤 제대로 요리해 보고 싶다.